매거진 Baum im Wind

아버지의 공구상자

옹골찬 아버지의 보물

by 폐관수련인

저리 좀 가!

아버지는 내가 공구 상자를 손댈 때마다 화를 내셨다. 10세 이하의 최초의 기억으로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단 한 번도 손재주에 대해 좋은 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없다. 분노 관련 문제가 있으신 건가, 기가 죽어 아버지 옆을 빙빙 돌던 내가 상기된다.

종종 아버지는 집안에 망가진 것들을 고치곤 하셨는데, 선풍기며, 정수기에 이어 텔레비전 같은 복잡한 기계 장치들도 시간이 좀 걸릴 뿐이지 결국 고쳐내셨다.


그러다 한 번은 못쓰는 나무 선반들로 가구 같은 것들을 만들 때는 마냥 신기해서 옆에서 구경하다가 다시 또 버럭 하시는 아버지가 떠오른다. 나는 그냥 톱질에 못질에 빨간색 페인트 칠이 고르게 된 이 나무 선반들이 무엇이 되는지 궁금할 뿐이었다. 이후 그게 갖고 싶던 새끼 강아지와 함께 그 작은 생물을 위한 집이었다는 사실에 아버지가 이벤트를 아시는 반전남인가 했었다.


아니 뭔지 알려주지도 않냐...

혼잣말을 뒤로하고 아버지의 공구 상자를 구경하다 또 혼이 났다. 빨간색 직사각형, 양쪽으로 펼쳐 여는 2단 구조의 이 상자는 마치 변신 로봇 같았다. 아래에서 차곡차곡 못, 망치, 전동드릴, 렌치 등, 잘 정리된 공구 상자 속의 물건들의 용도가 궁금했다. 어디에 쓰는 거야? 라는 질문에 아버지는 역시 화만 내셨다. 7세 어린이가 물어봐도 안 알려주는 건 이해가 간다지만, 17세 청소년이 물어보면 왜 앞 뒤 끝도 없이 화를 내는가. 두서없이 기만 죽이는 당신이 참 미웠었다.


짠~!

3년 전, 독일로 돌아가는 전날 밤. 아버지는 안줏거리를 많이도 가져오셨다. 손수 만든 구리 석쇠에 옹기종기 끼어놓고 구워주신 오징어를 집 식구들이 식탁에 마주 앉아 뜯었다. 그만 굽고 빨리 오라는 아들의 재촉에도 아랑곳 않는 아버지는 당신의 딸의 말에는 누구보다 빨리 반응하신다.

갑작스레 생각이 나, 당신에게 물었다. 아버지, 내가 공학박사 할 거라는 거 알고 있었어요?


알았지.

아니 그럼 왜 그렇게 화만 냈어요? 좀 알려줬으면 공부에 도움 됐지 라며 단순히 생각나는 대로 물어봤다. 어린 시절 그 작은 미움은 이미 진작에 사라지고 없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같은 생각이었다. 내가 공부를 멀리하게 될까 봐, 옛말에 손재주가 있으면 부자가 못 된단다. 그런 미신을 떠나서 질문만 하는 당신의 어린 자식에게 잘못된 사실을 알려줄 까봐가 주된 이유였다.


베를린행 KLM, 눈물 젖은 기내식.

인천 밤바다를 넘어가며 동생이 보내준 가족들의 음성 메시지는 몇 년이 지난 지금에도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아버지가 왜 그렇게 화를 내셨을까. 공학 박사가 되겠다는 모질이 아들에게 파이팅을 외쳐주는 당신은, 사실 본인에게 화를 낸 거였다.

이것저것 공구를 손대다가 다치는 건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모른다는 것에 대한 자존심 따위도 아니었다. 매번 빠릿하지 못한, 언제나 노력이 필요한 당신의 모질이 아들을 믿어주고 있는 마음에 비해 당신의 아들에게 못해준 것만을 생각했다.


매번 이렇게 아버지와 이야기 나눌 때면, 아버지는 꼭 스스로를 남들과 비교하신다. 나를 더 많이, 더 멀리 나아 가게끔 해주지 못했다는 것들만 또 읊어서는 본인이 좀 더 가방끈이 길었다면 나는 이미 하버드를 가고도 남았단다.


마치 집안의 돌연변이 변종을 보는 듯 이 강 씨 일가는 본인들 또한 나와 같은 DNA가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당신이 시간을 얼마나 걸려서라도 고쳐낸 텔레비전처럼, 나도 그렇게 옹골찬 고집으로 박사가 되었다. 그 빨간 공구 상자처럼 잘 정돈 돼있진 못하지만, 공구 상자 같은 만능 아들이 될 것은 굳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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