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무더운 여름, 신탄진에 사는 형 집에 놀러 가려고 9시쯤 부산역에서 KTX를 타고 대전역으로 갔다. 기차에 내려 대전역 정문으로 가니, 택시 타려는 사람들이 그날따라 유독 많았고, 나는 10분 정도 땀을 흘리며 기다렸다. 대전역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 역에나 비둘기는 참 많다는 걸 느꼈다. 대체 저 비둘기는 어디에서 태어나서, 어떻게 여기로 왔다가, 어디서 죽을까. 개에게 전봇대에 오줌을 누고 냄새를 맡는 행동이 SNS에 “좋아요”를 누르는 행위이듯, 비둘기에게 기차역은 유튜브 같은 공간일까? 그때 6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누군가 뿌려준 빵가루를 먹는 비둘기를 향해 겁도 없이 달렸고, 비둘기들은 연거푸 날개를 움직이며 〈대전역〉이라는 이름 너머로 날아갔다. 그러던 중 나의 차례가 왔고, 나는 은색 구형 그렌져 조수석에 탔다.
“어디로 모실까요?”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찍어도 될까요?”라고 말한 뒤, 주소를 찍자 약 23분 정도 걸린다는 내비게이션의 얘기를 듣고, 택시비가 얼마나 나올지 기대됐다. 기사님은 “학생 덕분에 오늘 돈 많이 벌겠네요. 고맙네”라는 말을 하고는, 환한 대낮에 대전 블루스를 흥얼거렸다. 외할머니가 좋아하는 노래라 옆에서 같이 흥얼거리니, 기사님은 반가운 목소리로 “이야, 젊은 사람이 이 노래를 알아요?”라고 말했다. 학교에서는 복학한 이후로 후배들에게 아저씨, 아조씨, 할아버지, 늙은이라는 말만 들어 좀 서글펐는데, 젊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25세는 참 젊은 나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외할머니가 좋아하는 노래거든요.” 기사님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의 보관함에서 「7080 베스트 뮤직」이라 적힌 테이프를 꺼내 자동차에 넣었다. 노래를 듣다 외할머니랑 옛날 노래를 참 많이 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월요일 저녁마다 외할머니는 KBS1 가요 무대를 봤는데, 그전까지는 티브이 채널을 양보하시지만, 이때는 어림도 없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월요일의 마지막은 꼭 가요 무대를 보고 잤는데, 그 때문에 지금도 노래방에 가면 가끔「목포의 눈물」, 「마포 종점」, 「돌아와요 부산항에」 등을 부르곤 한다.
기사님과 노래를 흥얼거리다 보니 어느덧 택시비는 6,000원을 넘어갔다. 아직 도착하려면 10km 정도 더 남았다는 걸 확인하고는, 예전부터 궁금했던 걸 물어보기로 했다. “기사님. 실례가 안 된다면, 뭐 좀 물어봐도 될까요?” “뭐가 궁금하십니까?”“그... 기사님들은, 멀리 가는 손님이 좋아요? 아니면 가까운 곳 가는 손님이 좋아요?” “당연히 멀리 가는 손님이 좋죠.” “아 그래요? 왜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대전역에서, 제가 손님 태우려고 기다린 시간이 한 50분 되거든요? 근데, 만약 손님이 그냥 기본요금 나오는 곳 간다 생각해봐요. 우린 택시 기사니까, 손님이 말하는 대로 가긴 가야 하지만, 50분 기다렸는데 기본요금이 나오면 손해거든. 그래서 오래 기다렸는데, 가까운 곳 가자고 손님이 말하면, 지금도 승차 거부하는 기사들이 여럿 있어요. 그렇게 해서는 밥값도 안 나오니까.” “그러면 어느 정도 거리를 가야 이득을 봤다고 할 수 있나요?” “뭐 못해도, 5000원 이상은 나와야 기분이 좋죠. 짧은 거리를 가도 다른 아파트 단지나, 마트를 가면 괜찮아요. 그곳에서 다시 택시를 타는 사람들이 여럿 있으니까. 하지만 주택가나 사람 별로 없는 곳에 가면 이제 화가 나는 거지.” “아. 기사님은 오늘 저 덕분에 나름 많은 이득을 봤다고 할 수 있겠군요?” “그렇지. 거기다가 이렇게 말 잘 붙이는 사람이라 훨씬 좋지. 가끔 제 손주들이 저한테 그런 말을 해요. '할아버지, 요즘 사람들은 말 거는 거 싫어해'라고 하는데, 맨날 택시에 앉아 있으면 사람이 심심해 죽거든. 라디오를 듣거나 노래를 들어도 앉아서 10시간은 넘게 하는 말이 '어디 가실 겁니까, 안녕히 가십시오'라면 심심해 죽는 일이야. 내가 올해 나이가 여든넷이 됐는데, 여편네도 없어서 집 가면 정말 심심해 죽어. 나랑 60살은 넘게 차이 나는 것 같은 양반이, 이렇게 말동무가 해주니까, 오늘 하루는 정말 운 좋은 거지.”
말씀이 끝나는 타이밍에 「나성에 가면」이 자연스럽게 나왔고, 2km 남짓한 거리를 가는 동안 노래를 흥얼거렸다. “즐거운 날도 외로운 날도 생각해주세요. 나와 둘이서 지낸 날들을 잊지 말아 줘요” 나성(羅城)은 시쳇말이지만, 가끔 LA라는 이름보다 나성이라 부르고 싶을 때가 있다. 프랑스보다 불란서(佛蘭西), 이탈리아 말고 이태리(伊太利), 유럽 말고 구라파(歐羅巴)라 부르는 게 좀 더 입에 감길 때가 있다. 내릴 곳에 도착한 뒤 확인한 택시비는 14,400원이었다. 지갑에서 반듯하게 접힌 현찰과 동전을 꺼내 드린 뒤, 만수무강하길 바란다는 인사를 남기고 문을 열었다. 기사님은 “학생도 복 많이 받아”라는 여름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을 하셨다.
은색 그렌져가 점점 멀어진다. 이곳 근처는 사람이 어느 정도 사니까, 손님을 태우고 어디론가 가시겠지. 나 같은 손님이 퍽 괜찮다고 하셨으니 그런 손님 태우고 조심히 가시길 바라는 마음에 택시를 끝까지 바라봤다. 택시가 사라진 다음, 근처 흡연구역에서 담배 한 개비를 태우며 생각했다. 오늘 점심은 뭘 먹어야 할까. 형님이 여기 오시는데 10분 정도 걸리니까, 근처에 삼계탕집이 있다면, 들어가서 몸 보양을 해야 할까. 아니면 대전하면 유명한 칼국수를 먹어야 할까. 담배 케이스에 남은 마지막 한 개비를 더 꺼내 입에 물고 기사님이 한 말을 천천히 생각했다. 나는 당장에 혼자 있는 10분도 입이 심심해서 담배를 물어야 하는데, 어떻게 말하는 걸 참을까. 불이 제대로 붙지 않은 담배에 다시 불을 붙이고 천천히 연기를 빨아들인 다음, 다시 내뱉으며 빠르게 사라지는 연기를 봤다. 하긴 더운데 어디 안 들어가고 더워도 밖에서 담배 태우는 것도 누가 보면 대단한 일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