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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락 Feb 23. 2020

무궁화호는 천천히 달린다.

대신 의자가 조금 더 편함. 


마산역.

 어린 시절 추운 겨울날 가족과 무궁화호를 타고 외가에 갈 때, 기차를 9시간 정도를 타야 했다. 마산에서 동대구역으로 간 다음, 동대구역에서 강원도로 가는 오후 4시 기차를 타면 묵호에 저녁 9시 반에 도착했다. 지금 생각하면 고역이지만, 어린 나는 가족끼리 기차를 타서 마주 앉아 얘기하고, 자고, 밥 먹는 것과 마산에는 없는 눈을 창밖으로 실컷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특히 올라가던 중 영주역에 내려 집에서 챙겨 온 통에 가락국수를 담아 열차에서 먹을 때가 기억에 남는다. 기차를 타고 올라가다 보면 창밖은 검은색이 되고, 기차 안도 엄청 조용해진다. 강원도를 갈 때, 기차가 중간에 멈추고 잠시 뒤로 갔다가 다시 출발하는데, 그때마다 나는 ‘아 좀 있으면 외가에 도착한다’라고 생각했다. 이런 추억 때문에, 21세의 나는 외가댁에 무궁화호를 타고 가보자고 결심했다. 합성동 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가면 4시간 반 걸리지만, 굳이 무궁화호를 타고 강원도로 갔다. 

 가방에 갈아입을 옷, 책, 간식, 충전기, mp3 플레이어, 카메라, 노트, 필통을 챙기고 마산역에 기차를 타러 갔다. 당시 내가 쓰던 휴대전화는 아이폰5S였는데, 겨울에는 툭하면 꺼지기도 했고, 지금처럼 배터리가 오래가지도 않았을뿐더러, 보조배터리도 없어서 mp3 플레이어는 꼭 챙겨야 했다. 마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동대구역으로 갈 때는 오래 걸리지 않아서 시간이 잘 갔다. 눈을 붙이면서 강원도에 도착하면 눈을 치우고, 할머니랑 고스톱을 두고, 사촌 동생과 놀 생각을 하다 자면 동대구에 도착했다. 문제는 동대구에서 묵호까지 갈 때였다. 언제부턴가 기차에는 음식 카트가 없어져서 타기 전에 뭐라도 든든하게 먹어야 했다. 맘스터치 버거를 포장해서 기차에 탄 다음, 노래를 들으며 기차표를 확인했다. “동대구→묵호. 16:30 – 22:07” 언제 도착할지 생각하면 머리가 깜깜했지만, 내 머릿속보다 창밖이 더욱 깜깜했다. 필통을 꺼내 노트에 기차를 타며 본 것을 적던 중 영주역에 도착했고, 7분간 정차한다는 소식에 지갑과 카메라를 챙겨 내릴 준비를 했다. 

 영주역에 내려서 이곳저곳을 둘러봤지만, 승강장(昇降場)에 있던 가락국수는 사라졌다. 아쉬워서 편의점에서 육개장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삼각김밥을 위에 올린 다음 다시 기차에 탔다. 하긴 이제 누가 강원도 갈 때 무궁화호를 타겠는가. 이용객이 줄어들면 사라지는 것이 당연했다. 당장에 기차 안에 좌석은 60석이 넘는데, 앉아 있는 사람은 절반도 안 됐으니까. 라면을 다 먹고 좌석에 앉아 지나치는 역 이름을 하나씩 적었다. 헌동역, 임기역, 분천역, 양원역, 승부역. 승부역은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해서 밖을 봤지만, 정말 작은 역사와 언제 적었을지 모를 역 간판이 있었다. 언제부터 기다렸을지 모를 할아버지 한 명과 할머니 한 명이 기차에 올라탔다. 기차역 주변에는 소복이 쌓인 눈과 기차를 배웅해주는 직원 한 분이 있었다. 그들을 두고 무궁화호는 다시 강원도를 향해 갔다. 아마도 내가 노트에 적었던 기차역들은, 내가 할아버지가 되면 사라지지 않을까. 생겨나는 것도 많지만,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는 것도 많으니까.

 도계역에 도착하기 전 창밖을 보자 눈이 내리고 있었다. 밖을 보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라는 『설국』의 첫 문장이 떠올랐다. 경상도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눈이라서 잠시 내려 눈을 만졌다. 마치 로맨스 영화에서 눈이 오듯, 도계역에는 눈이 천천히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고, 역 표지판 위에는 이미 눈이 쌓여있었다. 외가댁 마당에도 눈이 쌓여있을 생각을 하니 두근거렸고, 다시 기차에 탔다. 묵호역으로 가는 동안 눈이 점점 거세지는 느낌이었다. 로맨스 영화에서 갑자기 「투모로우」가 된 느낌이었고, 이 상태로 묵호에 도착하면 아마 눈 때문에 옷이 다 젖지 않을까 싶었다. 기차에서 타서 꺼둔 휴대전화를 켜고 외가댁에 전화했다. 좀 있으면 역에 도착할 것이라 말하자, 외할머니는 “눈이 많이 오니께, 단디 와라”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으셨다. 

 휴대전화에 쌓인 카카오톡 메시지를 확인했는데, 평소에는 빨리 답하던 사람이 오랜 시간 답장이 없자 무슨 일이라도 난 것처럼 어디냐고 물어봤다. 나는 답장 대신 기차표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이제 곧 강원도에 도착한다는 말을 적었다. 친구들은 댓글로 강원도에서 푹 쉬고 와라, 기차 여행 부럽다 등의 댓글을 달았다. 묵호역에 도착하기 전, 많은 게 생겨난 만큼, 많은 게 없어진다는 걸 실감했다. 이제 내 또래 친구에게 역에서 내려 국수를 샀다고 얘기하면, 다들 거짓말하지 말라고 말할 것이다. 역 이름이 승부라는 것도, 그곳에도 기차를 타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도 나중에는 다 사라질 것이다. 그래도 묵호역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중 묵호역에 도착했고, 짐을 챙겨 내렸다. 묵호역 간판에는 눈이 쌓였고, 다행히도 엄청난 양의 눈이 내리진 않았다. 하지만 이미 역에서 도로로 가는 길에는 아무도 밟지 않는 눈이 있었고, 첫 발자국을 세기며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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