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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유가 Oct 07. 2019

높고 푸른 사다리

공지영

언제나 이사 올 사람은 여행하는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법이다




Hodie Mihi, Cras Tibi




나는 갑각류와 같은 사람이란다. 나는 뼈가 피부 밖에 있는 사람이야. 뼈가 피부 밖에 있기에 웬만하면 찔리지 않는다. 그러나 한번 찔리고 나면 그것을 빼낼 방법이 없단다. 그런 면에서 그토록 상처 입는 연한 피부를 뼈 밖에 내어놓고 다니는 포유류가 진화의 우위에 서 있는 건 너무 옳다. 그들은 자주 찔리긴 하지만 곧 떼어낼 수 있고 그리고 그 상처를 치유하면 되니까.


할머니가 갑각류라는 표현을 쓸 때 썼을 때 딱딱한 내 뼈 안에 이미 나 있는 깊숙한 상처의 통증이 느껴졌다. 나는 순간 숨을 멈출 뻔했다. 왜 내가 그토록 많이 아픈지 나는 이제 알 것 같았다. 왜 내가 그동안 무난히 지내는 지도 알 것 같았다. 갑각류. 평소엔 저녁 찔리지 않으나 한번 찔리고 나면 이미 나 있는 상처를 치유할 방법이 없는.


요한 수사와 그의 할머니의 대화 중.




오늘은 창밖으로 바람이 많이 불더라구요. 바람은 잡을 수 없어요. 한 방향으로만 불어 가니까요. 그리고 가버리니까요. 강물도 그렇죠. 한번 흘러간 강물은 더 이상 방금 전의 그 강물이 아니죠. 시간도 한 방향으로만 흘러요. 말할 것도 없죠. 이 세상의 모든 흘러 다니는 것 가운데 어떤 한순간 한 지점에서 양방향으로 흐르는 유일한 것은 사랑이에요. 그러나 그것조차 대개는 한 방향으로 흐릅니다. 우리는 불평할 수 없어요. 그렇다고 사랑하지 않을 수도 없지요. 아니 사랑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그 에너지를 어디에 쓰는 게 좋을까? 더 나을까? 의미가 있을까? 10년이 지나도 잘했다고 느낄까? 나는 아직 그 답을 찾지 못했어요. 그래서 저는 사랑합니다.


토마스 수사의 이야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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