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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한하늘 Jan 11. 2021

[Share] 듣는 사람을 중심에 두는 커뮤니케이션

커뮤니케이션은 혼자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communication이라는 단어는 '함께'를 의미하는 'com'으로 시작된다. 말하는 사람과 메시지만 있고 듣는 사람이 없다면, 그것을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말하는 사람', '메시지', 그리고 '듣는 사람'이 모두 갖추어져야 커뮤니케이션이 성립되는 것이다. 그런데, 커뮤니케이션이 '성립'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꼭 커뮤니케이션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커뮤니케이션에는 숨어있는 요소가 한 가지 더 있다. 그것은 바로 '목적' 혹은 '의도'이다. 커뮤니케이션이란, 말하는 사람이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듣는 사람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행위인 것이다. 목적이 없는 메시지의 전달은 비록 말이 오고 갔다고는 해도 제대로 된 커뮤니케이션으로 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그 '목적'이 달성되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커뮤니케이션이 성공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목적에는 정확한 정보의 전달이라는 1차적인 목적과, 상대방의 생각이나 행동에 영향을 미치려는 2차적인 목적이 있다. 중요한 것은 정보의 습득이나 생각과 행동의 변화 모두 듣는 사람의 의지와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듣는 사람의 의지가 없다면 정보가 정확히 전달되기도 어렵고, 생각이나 행동에 변화가 일어나기는 더더욱 어렵다. 따라서, 말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려 노력함과 동시에 듣는 사람의 의지와 노력에도 영향을 미치려고 시도해야 한다. 그래야 말하는 사람이 의도한 커뮤니케이션이 보다 쉽게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커뮤니케이션의 '성공'을 위해 듣는 사람의 어떤 면을 고려해야 할지 간략히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상대방과 연결되려 노력하자.


예전에 아이 유치원에 강의를 들으러 간 적이 있다. 육아에 관한 강의였는데, 아내가 시간이 안되어 내가 휴가를 내고 갔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아빠는 나 밖에 없고 전부 엄마들만 와 있었다. 그래서 수십 명의 엄마들 속에 청일점으로 함께하며 강의를 들었다. 강사가 오고 강의가 시작되었는데 그전까지 주로 회사 교육을 통해 들었던 강의와는 사뭇 달랐다. 그전까지 내가 들었던 강의들은 주로 강사가 그 분야에 얼마나 전문적인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 알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소위 '저만 믿고 따라오세요'라는 메시지로 시작되는 강의들이었다. 그런데, 유치원 강의의 그 강사는 자기소개는 제쳐두고 다른 이야기만 했다. 엄마들이 아이를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호응을 유도했다. 엄마들은 자신들의 노고에 대해 이야기해 주니 기꺼이 호응을 해주고 있었다. 강의 시간이 한 시간 정도였는데 무려 20분을 그런 이야기로 보냈다. 그리고 20분이 지나서야 자기소개를 간략히 하고 본격적인 강의를 시작했다. 강의 도중에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간혹 율동 같은 것을 시키기도 했는데, 강의를 듣는 사람들이 그렇게 협조적으로 호응하는 모습을 나는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볼 수 없었다.

'경청'이란 듣는 사람이 말하는 사람의 메시지에 '주의 깊게' 귀 기울이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경청에는 듣는 사람의 의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의지는 듣는 사람의 의무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그런 의지는 말하는 사람이 유도해 내어야 한다.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지닌 것이 대체로 말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의지를 유도해 내기 위해서는 먼저 듣는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해야 한다.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상대방의 마음에 어떤 의지를 심는다는 것은 눈을 가리고 과녁을 겨냥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나아가서 내가 당신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알려주는 것이 좋다.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대상, 자신을 이해하는 대상에게 우호적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변화보다 안정을 추구한다. 누군가 자신을 변화시키려 할 때, 사람들은 방어적인 태도 혹은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기 쉽다.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 그 사람이 그동안 가지고 있던 지식이나 신념을 부정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말하는 사람이 나를 이해하고 있고, 나에게 우호적이고, 나와 공통점이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면, 아마 자신을 지키려는 마음을 조금은 내려놓고 말하는 사람의 메시지를 들으려 할 것이다.


상대방의 언어로 이야기해 주자.


늘 게임 만드는 일을 하다가 2년 전부터 AI 연구를 하고 있다. 내가 AI 연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아이가 나에게 AI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이럴 때, 신경망이 무엇이고 역전파가 무엇인지 등을 설명한다면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 이야기를 이해하는 초등학생도 어딘가에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초등학생에게는 어려운 이야기일 것이다. 따라서 'AI는 컴퓨터가 사람처럼 생각하게 하는 것인데, 예전에는 몇 가지 규칙대로만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이 이제는 진짜로 사람이 생각하는 방법대로 생각할 수 있게 되어서 많이 똑똑해졌다'라는 정도로 이야기해 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번에는, 새로 만들고자 하는 게임에 대해 사업부 사람들에게 설명한다고 생각해 보자.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은 보통 게임의 '재미'에 관심을 많이 두기 때문에 '재미'를 중심으로 이야기하기 쉽다. 이 게임은 이래서 재밌고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할 거라는 식이다. 하지만 사업부 사람들이 주로 관심 갖는 것은 '매출'이다. 게임이 얼마나 재미있는가 보다는 이 게임이 돈을 얼마나 벌어들일 수 있을가에 더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업부 사람들을 내 편으로 만들고 싶다면, 이 게임이 얼마나 재미있는가 보다는 이 게임이 어떻게 해서 매출을 만들어 낼 것이고, 그 규모는 어느 정도가 될 것인지를 설명해 주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사람이란 본래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강하다. 내 주변에서 많이 일어나는 일은 온 세상에서 많이 일어나는 일인 것 같고,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은 남들도 옳다고 여길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다 보니 내가 알고 있는 무언가를 설명하려 할 때도 마치 내가 나에게 설명하듯이 설명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하지만 내 이야기를 듣는 상대방은 나와는 알고 있는 지식도, 겪어온 경험도, 옳다고 믿는 가치관도 다른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나에겐 익숙한 것이 그 사람에게는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고, 반대로 나에게는 익숙하지 않지만 그 사람에게는 익숙한 것도 있게 된다.

말하는 사람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듣는 사람이 일단 그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말하는 사람이 설명하기 쉬운 어휘와 관점보다는 듣는 사람이 이해하기 쉬운 어휘와 관점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해야 한다. 물론 상대방의 지식과 경험, 가치관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그냥 내 언어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보다는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찾아내려고 노력하고, 그 언어로 이야기를 진행하려고 하는 것이 커뮤니케이션의 성공 가능성을 분명 높여줄 것이다.


상대방이 편하게 들을 수 있도록 하자.


산만하고 말썽을 많이 피우는 아이에게 따끔하게 한마디 하려고 한다. 그런데 옆에는 아이의 장난감이 진열되어 있고, TV에서는 아이가 좋아하는 만화가 나오고 있다. 과연 아이는 부모의 말에 집중할 수 있을까? 부모의 말에 집중하지 못하는 게 아이의 잘못일까?

퇴근 시간이 되어 퇴근하려는 동료에게 할 말이 있어 잠시 이야기를 나누자고 한다. 과연 그 동료는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 줄까? 자꾸 핸드폰을 쳐다보는 게 말하는 사람을 소홀히 여겨서일까?

사람은 생각보다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시끄러운 환경과 조용한 환경, 물건이 어질러진 공간과 깔끔히 정리된 공간, 막 자고 일어난 시간과 이제 곧 잠자리에 들어야 할 시간, 노을이 지는 풍경과 비가 오는 풍경, 응원하는 스포츠팀이 이겼을 때와 졌을 때,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상태를 시도 때도 없이 바꾸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태 변화는 우리의 집중력과 판단력에 영향을 미친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일일이 다 고려할 수는 없다. 상대방의 상태를 좋게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도 하거니와,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상대방이 불편해할 만한 상황을 피하는 것 정도는 신경 쓰는 것이 좋을 것이다. 농구공은 던져서 바스켓에 들어가지 않으면 다시 던지면 되지만, 커뮤니케이션은 첫 시도에서 실패하면 두 번째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불편한 장소, 불편한 시간을 피하고, 상대방이 내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고 생각되면 좀 더 적당한 때를 기다리는 것이 말하는 사람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분명 도움될 것이다.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이 내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큰 노력이 들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 예쁘지만 가독성이 떨어지는 디자인을 사용한다던가, 슬라이드 하나에 텍스트를 빽빽이 적어서 상대방이 열심히 읽어야 하게 만드는 것들은 준비한 사람의 생각과 달리, 보는 사람을 힘들게 만들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에서 오고 가는 것은 정보만이 아니다.


커뮤니케이션은 정보를 전달하고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사람과 사람 간에 이루어지는 교류의 한 형태이기도 하다. 커뮤니케이션이 진행되는 동안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간에는 유대감이 형성될 수도 있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또한, 커뮤니케이션의 내용에 따라 각자 상대방에 대해 어떤 평가를 마음속으로 내리기도 한다. 따라서, 말하는 사람은 커뮤니케이션의 과정이 커뮤니케이션에 참여하는 사람 모두에게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렇게 하면, 애초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뿐만 아니라, 상대방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게 되는 효과까지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문의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1. 상대방을 이해하고 상대방과 연결되려 노력하자.

사람은 나를 이해하는 사람에게 우호적이 된다.

2. 상대방의 언어로 이야기해 주자.

상대방에게 익숙한 용어와 관점을 사용하면 상대방이 이해하기 쉬워진다.

3. 상대방이 편하게 들을 수 있도록 하자.

상대방이 불편을 느낄 요소가 없는지 먼저 점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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