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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직업과의 이별을 준비해야 할 때

by 취한하늘

19세기만 해도 사람의 평균 수명이 50세를 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시절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 직업으로 삼은 일을 하다가 생을 마쳤을 것이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많은 국가에서 80세 이상의 평균 수명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많은 직장에서 60세 정도에 정년이란 것을 두고 있다. 정년이 되면 더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그리고 기존에 하던 일과는 다른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살아야 하는 세월이 20년을 넘긴다.


그래서 많은 직장인들이 마흔을 넘어가면서 다음 삶을 생각한다. 예전처럼 평생 고용이 보장되는 시대가 아니다 보니 60은커녕 50이 되기 전에 직장을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할 수도 있다. 이미 많은 돈을 벌어서 노후가 걱정 없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계속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도 있다. 혹은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무엇이든 일을 계속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도, 직업을 갖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 있었다. 군대를 다녀와서 프로그래밍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다진 실력으로 프로그래머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다. 하지만, 직장 생활을 시작할 때는 여전히 프로그래머로서 많이 미숙했다. 미숙했음에도 불구하고, 젊었기 때문에 프로그래머로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의 삶은 얘기가 다를 것이다. 미숙한 상태로는 하고 싶은 일을 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두 번째의 삶이 시작되기 전에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


첫 번째 직업과 비슷한 일을 노년에도 계속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행운이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노년에도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직업을 가져야 한다. 그나마 첫 번째 직업과 연관이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것만 해도 다행일 것이다.


새로운 직업을 찾아야 하는데 아무래도 신체는 젊을 때 같지 않고, 일을 하면서 배울 수 있는 기회도 흔하지는 않기 때문에, 자신에게 잘 맞는 직업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다행인 것은, 첫 번째 직업을 결정할 때에 비해서, 대부분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 하는지, 무엇을 할 때 즐거움을 얻고, 무엇을 할 때 스트레스를 받는지, 마흔이 넘어선 사람들은 젊었을 때보다는 잘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알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잘 따라가는 것이 필요하다.


노년에는 젊었을 때만큼 많은 돈이 필요하지는 않다. 두 번째 직업을 조금 일찍 시작한다면, 자녀들이 독립하기 전까지 꽤 많은 수입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일정한 시기를 넘기면 수입을 줄여도 되는 시기가 온다. 그래서 두 번째 직업은 대체로 수입보다 행복과 건강이 더 중요한 것 같다. 건강하게 일할 수 있고,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아야 남은 인생을 만족감으로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일이 우리에게 주는 것이 돈만은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자신의 존재가 가치 있는 것이기를 원한다. 그래서 삶의 이유가 흐릿해지는 시기일수록, 우리 자신을 가치 있다고 느끼게 해 줄 무언가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일은 우리들로 하여금 우리 삶이 아직 가치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무언가가 된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주었던 첫 번째 직업을 마무리 지어야 하는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잃었다고 해서 자신의 가치가 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수십 년을 반복했던 익숙한 생활 패턴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여전히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 줄 무언가가 있음을 믿고, 한 번 찾아냈듯이 다시 찾아낼 수 있다고 믿기를 바란다. 찾아내기를 희망하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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