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에서는 박물관을 잘 가지 않는 편이지만, 해외여행에서는 많이 다니는 편이다. 아무래도 외국의 박물관에는 낯선 물건들이 많기 때문에 보는 재미가 있는 것 같다. 거기다 2010년쯤부터는 미술관도 다니기 시작했다. 타이베이에서도 시간 여유가 많아 미술관과 박물관을 몇 군데 돌아다녔다.
타이베이에는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국립 고궁박물관이 있다. 소장한 작품 수가 70만 점 정도 되는데, 한 번에 다 전시할 수 없어 몇 년마다 전시물을 교체한다고 들었던 것 같다. 이 박물관의 전시물들은 대부분 국민당이 중국 본토에서 타이완으로 옮겨온 것들이다. 원래는 중국에 있어야 하는 유물들이지만, 문화 혁명을 생각하면 타이완으로 옮겨온 덕분에 아직까지 보존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유명한 유물인 '취옥백채'와 '육형석'도 직접 봤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몇 년마다 전시물을 교체하는 와중에도 대표적인 유물들은 계속 전시 상태로 두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사진 촬영이 허용되지 않아 유물의 사진을 찍지 못했다는 것이다. 유럽의 미술관이나 박물관들도 예전에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디지털카메라와 스마트폰이 일반화되면서 점차 사진 촬영을 허용하는 쪽으로 돌아서고 있었는데, 타이베이의 국립 고궁박물관은 2014년 당시까지도 사진 촬영이 허용되지 않고 있었다.
당대 예술관은 우리가 보통 현대 미술관이라고 부르는 것과 동일한 것 같다. 현대 미술은 2010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봤는데, 상상력을 자극하는 전시물들이 많아 재미가 있다. 고전 미술들은 시대별로 뚜렷한 특징을 느낄 수 있는데, 현대 미술은 동시대의 작품들이지만 표현과 내용, 소재 등이 너무도 다양해서 작품이 많아도 잘 질리지 않는 것 같다.
타이베이의 현대 미술을 접할 수 있는 곳으로 시립 미술관도 있었다. 타이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미술관이라고 하는데, 과연 공간이 넉넉해서 그런지 넓은 공간을 활용하는 작품들도 많았고, 방 같은 공간을 독립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들도 있었다.
중정 기념당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으로 분류하기는 애매한 것 같지만, 여기서도 여러 가지 흥미로운 전시물들을 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장개석'이 성과 이름인 줄 알았는데, 이름은 '중정'이고 '개석'은 자였다. 제갈량을 제갈공명이라 부르는 것과 같은 것인 것 같다. 여기에는 장개석과 관련된 전시물도 있었고, 그 외 예술가들의 작품도 일부 같이 전시하고 있었다.
별다른 정보 없이 찾아갔는 데, 운이 좋게 교대식을 볼 수 있었다. 경비병들이 교대하는 장면은 다른 나라에서도 본 적이 있지만, 절도로 치면 중정기념당의 교대식을 따라올 곳이 없을 것 같다. 동작이 크게 색다른 것은 없었지만, 합이 너무 잘 맞고 절도가 있어 구경할만했다.
개인이 운영하는 박물관으로 미니어처 박물관이 있었는데, 이곳도 무척 볼만했다. 워낙 시간이 남아서 방문하게 되었고, 입구를 보면서 크게 기대를 안 했었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구경할만한 것이 많았다. 집 내부를 만들어 놓은 것은 사진을 찍어서 보면 실제 집인 것처럼 보였고, 그 외에도 작품이 꽤 많았는데, 모두 디테일이 장난 아니었다. 레고나 프라모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미니어처를 취미로 가져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도시가 파리인데, 사진을 정리하면서 보니 타이베이에서도 여러 군데 방문했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제일 가까운 서울의 미술관들은 잘 가지 않으니, 그것이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박물관이야 학창 시절에 나를 괴롭히던 국사 과목 때문에 흥미가 떨어졌을 수 있지만, 미술관은 시간 날 때 한번 여기저기 다녀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 서울에 어떤 미술관이 있는지조차 잘 모른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서둘러 이 글을 마쳐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