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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한하늘 Dec 01. 2023

내 서재 속 물건들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오면서, 아내의 배려 덕분에 '서재'라는 것을 갖게 되었다. 덕분에 쾌적한 환경에서 재택근무도 하고, 이런 글도 쓰고 있다.(감사합니다, 아내 님!) 그런데, 서재 속에는 나와 오랜 시간 함께 하고 있는 물건들이 꽤 있다. 오늘은 그런 물건들을 새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한다.


피겨들


2006년에 일본 지사로 이동하여 근무한 적이 있다. 4개월 정도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지냈는데, 2주에 한 번씩 한국에 와서 가족을 만나고, 그 사이 주말에는 도쿄 시내와 인근 지역을 돌아다녔다. 그런데, 당시 내가 자취하던 곳 근처에 중고 피겨 거래로 유명한 상가가 있었다. 2, 3개 층에 굉장히 많은 피겨 거래 샵이 있었고, 진열장마다 여러 가지 피겨들이 있었다. 그래서, 종종 그 상가에 들러 피겨들을 구매했는데, 그 피겨들이 지금 서재 한편 진열장 속에 진열되어 있다.


피겨 중에는 만화의 등장인물 피겨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로봇 피겨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로봇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특히, '건담'이라는 만화의 로봇을 좋아해서, 그 만화 속 다양한 로봇들의 피겨를 수집했다. 다행인 것은, 건담 피겨가 워낙 흔해서 비교적 가격이 저렴하다는 점이다. 중고 피겨는 품질에 따라서도 가격이 달라지지만, 희귀도에 따라서도 가격이 크게 달라진다.


나중에 방콕, 홍콩, 파리 등에서도 피겨 파는 곳을 찾아다녔는 데, 일본 외의 지역에서는 드래곤볼, 원피스 같은 히어로물이 대세여서, 로봇 피겨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다만, 전혀 의외의 지역에서 괜찮은 로봇 피겨를 구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아래 사진 속 피겨다. 그리고, 이 피겨를 득템 한 곳은 다름 아닌 부천의 한 '문방구'였다.


어느 날 동네 문방구에 들렀다가 우연히 건담에 나오는 로봇들의 피겨를 발견하게 되었다. 상당히 좋은 품질이었는데 가격이 2,000원밖에 하지 않았다. 그래서, 종류별로 하나씩 사고 아는 형에게도 몇 개 사다 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정식으로 판매되는 제품이 아니었다. 아마 어떤 잡지에서 이벤트를 하면서 제공했던 물건이었던 것 같다. 그것이 어떤 경로인지는 모르겠지만 문방구 아주머니의 수중에 떨어졌고, 한국의 어린이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던 건담의 피겨들이라 2,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던 것이다. 참고로 일본의 중고 피겨샵에서는 우리 돈으로 10,000원 정도에 거래되는 물건이었다.


<문방구에서 한 구석에서 발견한 녀석들>


티모와 리그 오브 레전드 모자


얼마 전에 '롤드컵'이라 불리는 게임 대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광화문 응원까지 할 정도로 큰 행사였고, 각종 뉴스에서도 다룰 정도로 이슈가 되었는데, 그 대회에서 사용한 게임이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게임이다. 그리고 그 게임을 만들고 서비스하는 회사가 '라이엇 게임즈'이다.


라이엇 게임즈는 해외로 유출된 한국의 문화재를 환수하는 것에 도움을 주는 등, 한국의 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2014년에는 각국의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이벤트도 열었다. 그 이벤트에 한국 활동가로 지원하여 활동하였는데, 그때 라이엇 게임즈로부터 여러 가지 선물을 받았다.


가장 처음 받은 선물은 티모 피겨였다.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15~20cm 정도 되는 꽤 큰 피겨다. 일명 '티모 대위'가 문화유산을 방문하는 사진을 찍어서 업로드하는 것이 주요 활동이었기 때문에, 활동 초기에 지급받았다. 퀄리티가 상당히 좋고, 크기도 커서 이 피겨만으로도 보상은 충분히 받은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활동 말기에 티모 티셔츠와 리그 오브 레전드 모자 등을 받고, 당시 한국에서 열린 롤드컵 결승전의 초대권까지 받아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결승전을 직관하기도 했다.


<귀엽게 생겼지만 무려 '대위'다.>


한정판 산타 라이언


사진 속 라이언은 원래 둘째 아이의 것이었다. 2016년 연말에 교회에서 행사를 했는 데, 아이가 최우수상의 상품으로 라이언 인형을 가지고 왔다. 그런데 당시 만 6살의 남자아이였던 둘째는, 이런 인형보다 자동차나 공룡 같은 것에 더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나한테 이 인형을 3만 원에 사달라고 했다.


나는 피겨나 프라모델을 좋아하고, 인형은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그렇다고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산타 라이언은 꽤 귀엽다고 생각하는 데다, 아이가 돈으로 바꾸고 싶어 하니 3만 원에 인형을 사 주었다. 당시 이 인형의 정가는 7만 원 정도였던 것 같다. 하지만, 6살 아이에게 3만 원도 적은 돈은 아니라서 서로 만족하는 거래였던 셈이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이는 그 3만 원으로 본인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샀을 것이다.


산타 라이언은 내 서재 한 구석에 포장도 유지한 채로 잘 모셔져 있다. 지금도 고개를 돌리면 얼굴을 볼 수 있는 위치다. 보통 포장은 금방 뜯어 버리는 성격인데, 한정판이라고 하니 함부로 포장을 훼손할 수가 없었다. 다시 연말이 다가오는 지금, 나와 함께 한지도 만 7년이 되어 가는데, 앞으로도 꽤 오래 함께할 것이 확실한 녀석이다.


<7년 동안 계속 저 안에 있으니 조금 불쌍하기도..>


플레이스테이션과 엑스박스


나는 게임을 좋아한다. 그래서 직장도 게임 회사로 정했을 정도다. 하지만, 게임기를 사용하는 '콘솔 게임'은 거의 하지 않았다. 주로 PC 게임이나 모바일 게임을 플레이했다. 그러다가 몇 해 전에 갑자기 두 개의 게임기를 보유하게 되었다. 그것도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말이다.


회사에서 AI 대회를 열었다. 아마존의 도움을 받아, 자동차 모형을 이용한 자율 주행 대회를 열었다. 사내 대회여서 몇 십 명 정도의 직원이 참여하였는데, 그 대회에서 3등을 했다. 그리고 받은 상품이 '엑스박스 원'이었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나서, 이번에는 홀덤 포커 대회가 열렸다. 역시 사내 대회였고, 기억하기로는 160명 정도의 직원이 참여했던 것 같다. 그 대회에서 또 3등을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플레이스테이션 4'를 상품으로 받았다.


덕분에 콘솔 게임을 여러 개 해볼 수 있었다. 엑스박스는 잠깐 하고 말았고, 주로 플레이스테이션을 이용했다. 최근에도 종종 설치해서 플레이하는 데, 콘솔 게임 마니아들이 왜 콘솔 게임을 좋아하는지 금방 이해가 됐다. PC 게임이나 모바일 게임보다 몰입감이 훨씬 좋았다. 최근에는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콘솔 게임으로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기도 했으니, 앞으로는 일로도 취미로도 콘솔 게임과 계속 연결된 삶을 살게 될 것 같다.


<포커 대회 3위에 머물렀지만 내가 제일 원하는 상품이었다.>


플레잉 카드들


우리는 보통 '트럼프 카드'라고 많이 부르는 데, 영문으로는 보통 'playing card'라고 많이 표기된다. 이 카드들을 수집하기 시작한 것은 포커 게임을 만드는 조직에서 일할 때였다. 새로운 형식의 포커 게임을 만들 수 없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몇 가지 카드를 온라인으로 구입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재밌는 테마의 카드들이 많이 있었고,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나씩 구매하여 지금은 70개 이상의 카드를 가지고 있다.


온라인으로 구매할 때도 있지만, 여행을 하면서도 종종 구매한다. 기념품으로 카드를 파는 경우가 많아서 괜찮은 카드를 만나게 될 때가 가끔 있다. 기억나는 카드로는 팀 버튼 카드, 수학자 카드, 삼국지 카드, 내셔널 갤러리 카드, 알폰스 무하 카드 등이 있다.


특이한 카드로 우연히 알게 되어 구매한 카드가 있다. 52명의 아티스트가 1장씩 일러스트를 넣은 카드인데, 시리즈로 나오는 것을 여러 개 구매했다. 그중 하나는 한정판인데, 전 세계적으로 999개만 만들어 판매한 카드이다. 한정판이라고 해서 귀하게 모셔놓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 사용감이 있는 카드를 좋아하기 때문에 모든 카드는 뜯어서 한 동안 손에 들고 다녔다. 그래서, 한정판 카드 역시 가장자리가 바랜 느낌으로 남아 있다.


<52장의 카드가 모두 서로 다른 작가의 작품이다.>


물건은 기억을 담는다


어린아이의 사진을 찍을 때,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사진보다는 아이가 좋아하는 물건과 함께 하는 사진이 더 좋다는 이야기를 책에서 본 적이 있다. 사람보다는 물건을 통해서 아이의 추억이 더 잘 살아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을 다닐 때도, 여행을 추억할 만한 물건을 어지간하면 하나씩 사는 편이다. 


사진은 컴퓨터 안에 있는 것을 꺼내 보기 전에는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물건은 내 주변에 진열되어 종종 추억을 소환해 준다. 지금 책상 위에도 아이와 함께 여행하며 산 물건이 진열되어 있다. 앞으로 또 어떤 추억들이 어떤 물건이 되어 내 주변에 남게 될지,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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