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아마 내가 상병 정도였을 때가 아닐까 싶다. 당시, 선임들의 주도로 소대 문화를 바꾸어 나가고 있었다. 예를 들어, 이등병도 점심시간에 누워서 잘 수 있게 하고, 책을 보거나 매점을 가는 것도 자유롭게 하도록 했다. 지금은 당연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20년 전의 군대에서는 나름 파격적인 시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선임들 사이에서 '청소 평등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때까지 이등병은 화장실과 바닥 청소를 하고, 일병은 침상 청소를 하고, 상병은 정리와 지휘를 하고, 병장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계급 상관없이 청소를 같이 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의견이 선임들 사이에서 나왔다.
찬성하는 의견도 있고,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는데, 결국 이등병과 일병들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다. 당시에 우리 소대는 계급에 의한 차별을 실제로 없애고 있었기 때문에 계급이 낮은 병사들이 의견을 내는데 눈치 볼 필요가 없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등병과 일병들의 의견이 선임들의 예상과 달랐다. 그들은 현재 상태를 유지하고자 했다. 그들은 지금 힘든 일을 하고 나중에는 편해지는 것이 더 좋다고 했다. 그래서, 계급에 따라 청소 역할에 차별을 두는 것은 그대로 유지했다.
그 과정을 떠올리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든다. 먼저, 희망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군 생활은 어디나 힘들다. 당시 군 복무 기간은 2년 2개월이었는데, 그 기간을 버텨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26개월이 지나면 끝나겠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26개월은 너무 긴 기간이었다. 그런 병사들에게, 계급이 올라갈수록 무언가가 나아진다는 것이 큰 힘이 되었던 것 같다. 물론, 그들이 차별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부분에서 차별을 없애는 것을 대부분 좋아했다. 다만, 청소에서만큼은 '차이'를 남겨두어, 계급이 올라갈 때의 기쁨을 남겨두고 싶어 했고, 군생활의 끝이 아니라 몇 개월 앞을 바라보고 갈 수 있는 목표를 유지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또 한 가지는 존중에 대한 것이다. 어쨌든 다른 부분에서 차별을 없애고 있었고, 선임들이 후임병들을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존중해 주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존중받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청소에서 더 힘든 역할을 맡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 선임들이 후임병을 비인간적으로 대했다면, 작은 차별 하나도 불만을 증폭시키는 소재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게임을 하나 만드는 데도 2년 이상의 긴 시간이 걸린다. 그 과정에서 생산성과 사기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리고, 수십 명의 사람이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 완벽한 공정성을 유지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럴 때 단순히 구호나 그럴듯한 말로 사람들을 움직이려고 하기보다, 사람들이 오랜 시간을 버텨낼 수 있는 조건, 작은 차이 정도는 관대하게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 한다. 앞을 향해 나아가는 분위기, 본인이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 같은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어쩌면 백 마디 말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