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회사에서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 프로그램에서 여러 가지 실습을 진행했는데, 그중 롤링 페이퍼와 비슷한 것이 있었다. 종이를 돌리면서, 그 종이의 주인에게서 느껴지는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다시 그 종이가 주인에게 돌아가면, 한 명씩 일어나서 종이에 적힌 내용과 감상을 발표했다.
당사자가 앞에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심한 말을 쓰지는 않았다. 대체로 완곡한 표현을 썼던 것 같다. 그런데, 내 페이퍼를 받아 들고 나서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 페이퍼에 나쁜 말은 전혀 없었지만, 사람들이 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종합해 보니, 딱 ‘판사’의 이미지였다. 옳고 그름을 정확히 가리고, 그것을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그랬다. 나는 무엇이 옳은 것인지 가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옳다고 판정된 것을 모두가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거침없이 이야기했다.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었다. 회사 대표에게도 할 말은 해야 했고, 심지어 전 직원을 대상으로도 이야기할 수 있었다.
문제는 내용이 아니었다. 표현과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 나는 옳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일 수는 있어도 좋은 사람일 수는 없었다. 내가 이야기하는 방식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다. 어떤 일본인 직원은 다른 직원에게 내가 무섭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리고, 불편한 사람이 하는 이야기에 사람들은 인정은 해도 공감은 하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그때와는 많이 다르다. 말의 내용뿐만 아니라 표현과 방식, 환경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대화를 통해 내가 얻고자 하는 진정한 목적도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이야기를 듣는 상대방을 생각한다. 예전의 나는 나를 중심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옳은 말을 ‘하는 것’에 집중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대방을 생각한다. 상대방이 내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것’에 집중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표현, 방식, 환경, 목적이 중요해진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은 말을 제품으로 하는 영업 활동과 같다. 얼마나 품질 좋은 제품을 만들었는지보다 고객이 소비하고 싶은 제품을 만들었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이해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제품(말)을 바라보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