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과거의 가면을 다시 써보다

by 아메리 키노

가식의 가면을 쓰고 생각하고 움직이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물론 나 자신도 그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근데 그 가면을 전혀 엉뚱한 곳에서 쓰고 있다는 것...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써야 한다는 것...

어쩌면 가식이 아니라 연기일지도 모르겠다.

생쑈랄까... 미친 짓일 수도 있고...

중요한 건 독하게 마음먹고 연기하고 생쑈를 하고 미친 짓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일종의 가식들이 가까워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 멀어지기 위한 것이라는...

아무리 등신 같아도, 누군가가 등신이라 욕해도 피하지 않을 생각이다!


카카오스토리에서 지난 과거의 행적을 쓰윽 훑어보다가 2012년 11월 28일 새벽 2시 16분, 25살의 내가 쓴 글을 발견했다. 마치 싸*월드의 이불 킥 글귀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당시의 나는 생각보다 독하게 글을 써 내려갔던 것 같다. 무엇이 이토록 분노하게 만들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기억에 남아있으려나 했지만 딱히 왜 그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당시의 상황과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 시기가 마침 인간관계의 고통이 한참 진행 중이었을 시기였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응급구조사로서 생애 첫 직장을 전라남도의 한 시골 종합병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며 다니게 됐다.

친구들을 포함에 5명이 우르르 입사에 성공하며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친구 2명을 제외하고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업무를 수행했다.

수습기간이 가장 행복했다고 말하고 싶다. 무슨 일이든 배우는 기간엔 적응도 해야 하고, 공부할 것도 많으니 직장선배들의 터치는 "열심히 해", "잘해 봐"정도였으니까.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신입사원은 거기에 안주하고 말았다.


한 달, 두 달, 석 달... 시간은 엔진이 달렸는지 가속력을 내며 정신없이 흘러갔다. 좋은 시절도 다 간 셈이다. 본격적으로 실수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면서 선배들의 본모습(?)을 눈앞에서 직관할 수 있었다. 병원이라는 직장 특성상 남성보단 여성근로자 비율이 높은 편인 데다 나름 그 안에서 청일점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는데 예뻐해 주고 봐주고 그런 건 없었다. 병원이라는 곳이 한 치의 실수를 용납할 수 있었던 곳이던가. 절대 그렇지 않기에 혹독한 전쟁터에서 살아남으려면 "죄송합니다. 잘해보겠습니다"라는 아주 보편적인 총을 들고 맞서야 했다.

정말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넘치고 넘쳤지만 행동은 생각을 따라오지 못했다.


손이 느려서도 고생을 많이 했다. 지금 생각해도 정성을 다해해 보려는 그 마음은 갸륵했지만 시간별 업무를 딱, 딱 수행해야 하는 그 업무 속도를 따라가기엔 늘 역부족이었다.

시간별로 해야 할 일들을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며 부리나케 움직였지만 꼭 약속이라도 한 듯이 딜레이 되는 구간이 생기게 되고 점점 더 일이 밀리게 되는 업무 속 정체구간을 항상 만들어냈다. 선배들의 진심 어린 독려(?)는 도무지 멈출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자기 비하가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다. 선배들은 해야 할 이야기들을 한 것뿐이었다. 그들을 비난하고자 이 글을 쓴 것이 아님을 이제야 밝힌다. 사회초년생이 겪는 이 격동의 시기에서 퇴근 후에는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관점을 내 중심적으로 삐뚤어지게 해석을 많이 하게 됐었다.

'앞에선 이렇게 이야기하고, 뒤에서는 저렇게 이야기하겠지'

라는 생각에 지배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요즘 같은 '어쩌라고' 하는 그런 의식이 깨어있지 않았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좀처럼 행동으로 보이지 않으니 스스로를 낮춰가기 시작했다. 외적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나 안에서 인간에 대한 분노를 쏟아내었다. 아니 그래도 이 카카오스토리라는 플랫폼이 있어서 표출할 생각을 했다는 과거의 내 자신에게 잘했다고 한 마디 정도는 하고 싶다.

그래도 풀어내 줘서 고맙다.
그리고 잘했어!

그 민감했던 가면에 대한 부분이 지금은 '나름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라는 의식으로 바뀐 것 같다. 일말의 분노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는다. 한편으론 지금의 나는 '당연한 가면'을 쓰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인간관계에 대한 부분은 풀리지 않은 숙제들처럼 산적해있지만 짧게나마 살아온 경험치에 비추어 보면 그런 숙제들은 늘 뒤따라왔던 것 같다.

환경이 달라져도 인간의 본성은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에 다른 모습으로 그 어려움이 나타난다.

정리되지 않은 저 독한 말들이 얼마나 정리를 도왔을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경험하게 된 일과 인간관계가 어려웠던 사회생활 새내기는 가면이라도 쓰고 내적 폭발을 감당해내려고 하지 않았나 싶다.


※새벽녘에 쓴 글인데도 이른 아침부터 댓글을 달아준 친구들 덕분에 버텨냈던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