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묘를 마치고 들른 작은아버지 댁에서 잠시나마 얼굴 보고 인사를 드렸다. 그 잠깐 사이에도 결혼에 대한 이야기는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1년 가까이 교제하고 있는 짝꿍이 있었기에 당황하지 않고 작년 이 맘 때보다 긍정적으로 답변해드릴 수 있었다. 더구나 세부적이진 않아도 대략적인 결혼에 대한 부분들을 이야기해왔었기 때문에 위와 같이 말씀드릴 수 있었다.
그래~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을게~
인사를 드리고 차로 향하는 잠깐 사이에 '올해에는 정말 성사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현실적으로 잘 부딪혀갈 수 있을지 스멀스멀 걱정의 아지랑이 피어오른다.
30대가 되고나서부터는 여자 친구는 생겼는지, 결혼은 생각하고 있는지 친척분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명절을 보내왔다. 조카는 언제 볼 수 있냐는 친척동생들의 진심 어린 압박에 붉어진 얼굴에 헛기침으로 넘어갔던 순간들도 있었다.나에게만 일어난 일들은 아닐 것이라고 주문을 걸어본다.
이렇듯 자식 세대의 경사는 명절의 초미의 관심사다. 누구나 한 번쯤은 시청했을 법하면서도,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명절에 가장 듣고 싶지 않은 질문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송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상위 순위에 있는 항목들이 우리가 알고 있는 '취업', '결혼'이라고 했다. 젊은 세대들은 아등바등하며 취업의 순간과 결혼이라는 선택의 길목에서 쉽게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은 보통 문제가 아닐 것이다. 명절이 되어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까지 그 스트레스를 느껴야 한다면 너무 불편한 명절을 보낸다면 어디에서 숨을 쉴 수 있을까. 지나친 관심과 언행은 젊은 이들의 마음에 스크래치를 남기는 것 같다.
그 와중에 다행(?)스럽게 도긍정적으로 보는 시선 때문인 걸까?어른들이 이야기하는 분위기 자체가 충고, 핀잔의 느낌이 아니라 준비는 하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진심으로 생각해주는 마음이 느껴진다. 그래서 불편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명절에만 볼 수 있는 친척들이기에 오히려 인사를 나눌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겪어볼 만한 현실에 부딪혀 보라는 일종의 신호라는 생각도 든다. 확실히 결혼을 진심으로 생각할수록, 짝꿍과 이야기할수록 함께 준비해야 할 부분들이 산적해있음을 온몸으로 느낀다. 만남을 그려가는 것과 함께 삶을 그려가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현실적인 부분들을 고려하지 않으면 결혼 성사에 진척이 없음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똑 부러진 경제관념이 없는 나로서는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부터가 난관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신호를 일찍부터 주시는 것 같다. 한량처럼 그냥 시작하는 결혼이 아니라 미리미리 준비하라는 신호 말이다.
설날의 '설'은 순우리말로 '새해의 첫마디'라고 한다. 설의 유래에 대해서 다양한 해석들이 있었지만 새롭게 시작한다는 그 의미는 같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느덧 30대 중반이고 평생 함께 사는 삶에 대해 깊은 마디를 새겨야 할 시기가 왔다.
운이 좋게도 행복하고 즐거웠던 명절을 보낼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주신 부모님과 친척분들이 늘 함께 해주셨다. 그 이면에는청년시절부터 취업과 결혼을 통해 가족을 이루기까지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잘 살아보기 위해 내일, 내일모레를 그려가면서 살아오셨을 것이다. 내가 명절이 되어서야 그분들의 우뚝 선 모습을 보게 된 것은 아닐까. 결혼과 육아, 노후를 그려가야 하는 나로서는 나의 부모님과 친척분들의 모습을 통해 앞으로 그려가야 할 미래와 우뚝 설 수 있는 기준으로 정하려고 한다. 그 속에서 어느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가면서 더욱 행복한 모습으로 설날을 맞이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