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고 간단한 레시피지만 완성된 요리를 상상하니 군침이 마구 샘솟는다. 약간의 게으름을 지그시 밟고 일어나서 부엌으로 향한다. 대략 7분 뒤에 한 끼를 책임질 뜨끈뜨끈한 양은냄비가 밥상 위로 올라온다. 뚜껑을 열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며 천정을 달구는 나의 소울푸드는 가성비좋은 라면 한두봉 지다(하나로는 성에 안 찰 때가 많다). 술 한잔 거하게 하고 필름이 끊기기 전에 늘 함께 위장을 채워왔던 머리 국밥도 떠올랐지만 라면을 이기지 못하고 2순위에 머물렀다. 물론 평상시에도 '툭'하면 국밥을 찾았지만 라면은 'ㅌ'하면 찾았으니까 가장 가까울 수밖에 없다.순간 악동뮤지션의 노래 '라면인 건가'가 떠오른다.
맞벌이하시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면서 남동생과 끼니를 해결해야 할 때가 많았다. 밥과 반찬은 밥솥과 냉장고에 한결같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유난히 라면을 고집했다. 중화요리주방장을 하셨던 아버지께서 쉬는 날에 끓여주셨던 꼬들꼬들한 면발과 진한 국물 맛의 라면은 아직도 잊을 수 없는 맛이다. 요리가 주종목이셨던 아버지의 라면이었기에 그 어떤 라면보다 최고의 맛이라고 자부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아버지처럼 라면을 끓여먹고 싶은 생각에 늘 엄마를 졸라댔다.
엄마 나도 라면 끓여 볼래요~ 라면 끓이는 법 가르쳐 줘요~~
가스불이 얼마나 위험한데! 나중에 더 크면 가르쳐줄게.
한사코 자기가 끓이겠다고 칭얼대는 아들과 가스불의 위험에서 노출시키고 싶지 않은 엄마와의 티키타카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쉽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던엄마. 그럴수록 라면을 끓일 때마다 옆에서 계속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끓이는 모습만을 지켜봤을까. 마침내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꼬꼬마는 라면 끓이는 법을 배울 수 있었고 가르쳐 주신대로 라면을 스스로 끓여냈다. 그 맛은...안타깝게도 기억이 안 난다. 엄마가 가르쳐주셔서 그런가 싶다. 아무래도 좋았다. 그 좋아하는 라면을 마냥 기다리지 않아도 직접 맛볼 수 있었으니까. 아무튼 이후로 점점 스스로 라면을 끓여 먹는 날이 많아졌다. 다행인 건지 입맛이 둔해서 짜고 싱거운 것을 떠나 먹고 나면 약간의 건더기와 함께 냄비 바닥은 늘 드러나 있었다.
난생처음 스스로 만들어 본 음식이라 소울푸드라고 했을 때 떠오른 것이 라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좋을 때는 물론이고 힘들고 괴로울 때도 함께 했다. 몸에 그다지 좋은 음식은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지만 MSG의 유혹을 뿌리치기란 여간 쉽지 않다.어렸을 때부터 그걸 깨달았으니 몸이 기억할 수밖에 없다. 오죽했으면 4학년 수련회 때는 라면 국물만 국그릇으로 11그릇을 비워냈던 일화도 있다. 그때 아마 먹방을 했으면 초등학생 구독자들을 좀 모으지 않았을까 싶다.
어쨌거나 힘들고 괴롭게 마무리된 퇴근시간, 한가로운 주말 점심, 야심한 밤 11시만 되면 뜨뜻한 라면 생각이 절실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