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일 전 극적으로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라닥 '레'에서의 고립 이후, 오직 열려있는 길이라곤 '레 - 뉴델리 항공 노선'만 살아있는 고립무원 레에서 항공편을 예약하고, 동시에 같은 날 수시간 후 출발하는 국제선 뉴델리- 인천 노선을 예약해 놓고 사실 많이 마음을 졸여야 했습니다. 물리적으로 1,000km 나 떨어진 레에서 뉴델리를 항공편이 1시간 20분 만에 해결해 준다 해도 어느 것 하나 삐끗하면, 사태가 더 악화된다면, 비행 편이 캔슬된다면, 국제선 '뉴델리-인천' 노선이 펑크가 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에 얼굴을 제대로 펴지 못했습니다. 자정 무렵 비행기가 뉴델리 간디공항을 이륙하면서 안도의 숨을 쉬었습니다. 그리고 왠지 모를 피로와 함께 긴장의 끈이 풀어지면서, 한국에 도착하면 크게 한번, 끙끙 앓을 것 같다는 몸의 신호를 읽었습니다.
복잡 다난한 작은 거처, 한국의 아지트 홈에 도착해 가방을 풀어헤치고 또 한 명의 짐을 보태다 보니 장롱의 서랍들은 비좁음을 아우성치며 낯선 침입자를 반기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그곳을 채워갑니다. 그리고 예견한 대로 다음날부터 앓기 시작해, 만 삼일동안 침대 속에 몸을 웅크리고 상처를 돌봤습니다. 아직도 꿈을 꾸면 파미르 언저리를 헤매고 있는데, 이 몸은 어떻게 이동해 왔는지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현실감이 없습니다. 심지어 머물고 있는 이 공간도, 꿈속에 다시 몸을 담그면 사라지지 않을까 두려운 걱정마저도 잠재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서둘러 몸을 추스려, 한국 생활에 필요한 절차에 착수해 복원과 복구, 몸담았던 기관에 귀국 신고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절차를 마무리하고 다가오는 겨울 준비를 시작합니다. 그 첫 단계로 화목용 참나무를 30cm 정도의 난로용 화목으로 가공하는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새로운 벗들이 알면 깜짝 놀랄 일이지만, 이 몸의 생활 방식은 구태의연하게도, 이십 수년을 이같은 방식으로 화목 난로에 의존해 난방을 해결하는 원시적인 현대인이기도 하답니다. 가까운 벗들은 이 몸의 이런 겨울 준비를 마지못해 지지하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살 수 있을까 내심, 호기심으로 지켜보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엔진톱으로 화목 작업을 하다 보니, 이 몸의 근육 곳곳에서 아직은 일 할 준비가 안돼있음이 감지되곤 합니다. 너무 빨리 잘하려고 애쓰고 있었나 봅니다.
이 연재 굿바이 스리랑카의 마지막 페이지는 당연히 파미르 고원에서 띄우는 편지가 될 것으로 믿었는데,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살다 보면 이 같은 일은 다반사처럼 예사로운 일 중 하나일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 같은 기회가 또 올 수 있을까라는 가정에는 선뜩 동조하지 못하는 서운함이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오직 신만이 아실 거라는 믿음에 변화가 없다면, 언젠가 또다시 들불처럼 번져올 불길을, 지금은 지켜보면서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겠습니다. 상투적이지만 벗들의 안녕과 건투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