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24일, 라닥 '레'에서는 '라닥 페스티벌' 마지막 날 피날레 행사를 준비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북적이는 레의 바자르 메인 거리를 지나 약 700m 떨어진 숙소 그린 빌라(Green villa guest house)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의 북적이는 '레'를 본적이 마지막이었다. 아주 잠깐. 오후 페스티벌 피날레에 참석하려고 들떠있던 주민들과 관광객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비보가 전해진다. 속보에 따르면, 연방지위부여, 부족지역 특별지위등을 요구하는 시위대와의 폭력 충돌이 발생하여 최소 4명이 사망하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였음이 보도되었고, 그에 따라 레(Leh District)와 인근지역 카르길(Kargil District)에 통행금지령, 집회금지, 야간통금이 무기한 발동되었음이 공표되었다. 그러나 주민들 모두는, 아마도 다음날이면 풀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다. 다음 날도 정상적 일상을 기대했지만, 통행금지령은 해제되지 않았다. 또 다음날도. 모든 상가, 버스 터미널, 택시운행이 없는 거리에는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고 배회하는 들개처럼, 대부분의 외국인들만 어슬렁 거리뿐, 라닥지방 제일의 도시 '레'의 풍경은 활기를 회복을 하지 못한 채 일주일을 맞는다.
라닥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몇 개의 키워드 순수, 고원, 실크로드의 도시 '레'는 라닥 29만 명의 인구 중 얼추 절반인 13만 명 이상이 살고 있는 라닥 제 일의 도시이다. 그런대로 세련되고 도시화된 '레'에서 라닥의 민낯을 보게 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다분히 정치적인 구호아래 형성된 시위대에게 총격을 가할 만큼 위태로운 상황이었는지, 추정해 보긴 어렵다. 외국인 눈에 비친 대부분의 라닥 사람들은 매우 소박하며 순수하다는 점을 감안해 본다면, 이 같은 폭동을 유발할 만큼 그렇게 증오와 불신이 큰 것인지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다. 어쩌면, 외국인인 우리가 볼 수 있는 라닥의 모습은 너무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분노를 간과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어떤 정치적인 수사나 명분이 있다 손치더라도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절박한 사건이었을까라는 점에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
어쨌거나 그곳에 도착해 이곳저곳 트레킹노선까지 숙소 주인과 의견을 교환하고 베이스캠프 역할을 충분히 해 줄 것을 기대하던 그린빌라 게스트하우스는 졸지에 갇혀버린 투숙객들의 아침, 점심, 저녁, 삼시 세끼를 프.로. 바. 이. 드(p.r.o.v.i.d.e) 해줘야 하는 의무를 진채, 기약 없는 나날을 보내기에 이른다. 그나마 족히 1,000여 평에 이르는 포플러 나무로 둘러 쳐진 마당에는 무심한 코스모스꽃이 나부끼고, 백일홍의 시든 꽃잎, 수확을 앞둔 감자꽃까지 아주 다채로운 풍경으로 투숙객들을 위로하고 있었기 망정이지, 정말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저 점심을 먹고 따가운 가을 햇살아래 바자르 광장을 한 바퀴 돌면서, 경계 중인 군인들에게 언제쯤 이곳이 오픈할 것 같냐는 다소 바보스런 질문을 해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늘 같다. 오직 신만이 아실 거라면서 고개를 가로젓는다.
투숙객들은 하나둘 짐을 싸기 시작한다.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이 곤욕스러운 사태를 벗어나는 길은 이 도시를 떠나야 하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오직 열려있는 터미널은 '레 공항' 한 곳뿐이다. 그것도 목적지는 뉴델리. 꼬박 일주일을 기다리면서 길이 열리기를 희망했지만 이 몸도 결국은 육로여행을 포기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길을 선택하고야 만다. 감정은 너무 간사해, 처음엔 분노에서, 점차 현실적인 대안을 찾으며 결국 안전하게 이곳을 탈주할 수 만 있다면 족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것은 도떼기시장 같은 레 공항에 몰려든 인파를 보면서, 모든 인터넷 연결 주파수가 차단되면서, 외국인, 자국민 가릴 것 없이 군인들에 의해 힘없이 통제되는 모습을 당하면서, 모두는 제발 아무 일 없이 이곳만 벗어날 수 있다면, 그간의 라닥에 대한 모든 부정적 이미지와 서운함까지도 일거에 물문에 붙이겠다는 심정에 이르고 만다.
INDIGO Flight No. 6E 2402. LEH TO DELHI. Date 29 SEP 2025. Departure: 13:55 '레'를 이륙하는 마지막 비행기에 몸을 싣고, 히말라야 한 줄기의 산맥을 넘는다. 아주 오래된 미래를 뒤로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