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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스리랑카 Mar 11. 2019

몽골에서 띄우는 편지

겨울 홉스굴 축제장에서




축제 명칭이 다소 거창하다. Blue pearl -2019  International Ice Festival. 2.28일 오프닝 세리머니를 시작으로 3.4일까지 축제가 진행되었다. 전혀 일면식도 없었던  과기대 사회복지학부의 공식적인 행사에(홉스굴 시청과의 MOU 추진과 팀원들 간의 친목도 챙길 수 있는 '일타쌍피' 성격의  단합행사 ) 참여를 신청하면서 얼결에 겨울 홉스굴  축제에 다녀온 모양새가 되긴 했지만 설사 이 행사가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홉스굴은 다녀왔을 것이다. 왜냐하면 오래전부터 눈독을 들이며 교통편을 수집하고 숙박지를 검색하면서 계속 집적거리고 있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홉스굴 가는 길에...   노상방뇨 후 얼음판에서 축제에 걸맞게 보드카로 시동을 건다

                       



 



누가 뭐래도 홉스굴은 몽골 제일의 관광지이다. 몽골을 검색하다 보면  홉스굴은 저절로 따라 나오고 따라서 정보 또한 미주알고주알 없는 게 없다. 대략 정보에 의하면 남북 길이는 130km, 최고 수심은 260m, 면적은 2700 제곱 km 정도라고 하지만 막상 이곳 어느 한 지점에 도착해 떠나올 때까지 이동했던 동선을 살펴보면 그 같은 정보는 별반 홉스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질 않는다. 그 이유는 겨우 초입새의 십수 킬로 정도의 호수의 모습만 보고 홉스굴이 어떠니 하는 것 또한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이니 보이는 곳에서 주어진 대로 즐기는 것이 남는 것이다. 그러나 저러나  뭐 어찌 되었던, 처음 만난 홉스굴의 인상은 온화한 날씨가 한몫 단단히 해 주었다. 해발 1600m 고지대에 위치한 호수 위에 낮게 뜬 태양에서(몽골에서의 해는 지면과 엄청 가깝게 보인다)  쏟아지는 햇살은 영상 기온으로 착각할 만큼 부드럽고 따스했다. 더불어 바람 한 점 없는 겨울 홉스굴 호수 한가운데 차를 세우고 뛰고 눕고 뒹굴고 얼음판 위에서 온갖 재롱을 부리던 재미가 쏠쏠하다.












겨우 얼음판 위에서의 상황을 정리하고 축제가 열리고 있는 '하트갈'로 달려보지만 호수 위 얼음판에는 여름철에는 엄두도 내지 못한 풍경들이 곳곳에 있어 축제장에 쉽게 들어서지 못한다. 그중 하나. 호수 한가운데 섬이 있고 자연스럽게  모두는 그곳에 당연히 상륙한다. 아마도 이곳을 그냥 지나치는 것은 뭔가 크게 착각하는 거라는 무언의 다중 심리가 작용한 탓이리라. 순례를 마친 선생들이 삼삼오오 다시 차에 오르고  드디어 '하트갈' 축제장에 도착한다.










축제장에 생각보다 많은 차량과 사람들이 있어 놀랬다. 거기다 전통 복장으로 가지껏 멋을 부린  멋쟁이들이 지천에 널려있어 또 놀랐다. 또 거기에, 밝은 표정과 사람 가리지 않고  포즈를 취해주는 친절 모드까지 지니고 있으니 일단 외견상 축제는 흠잡을 데없이 신나게 먹고 마시고 즐겼다.





 



 

 그럼에도,


 굳이 한 가지 흠은 잡고 축제를 마무리해야겠다. 완벽한 옥에도 티가 있는 것처럼 하루 온종일 축제장에서 개겼다면 떠나는 시간 또한 여유롭게 진행되었으면 좋으련만 그러질 못했다. 처음 만나는 선생들이라 막판까지 깍듯하게 표정 관리를 해온 보람도 무색하게, 밤 11시가 넘어서까지 출발을 못하고 있는 꼴을 보고 있자니 급기야 표정이고 나발이고 설설 끓어오르는 화를 어쩌지 못해 애꿎은 조교한테 화를 풀어대고 말았다. 결국 축제는 그렇게 염장을 지른 채 끝났다.




그 발단은 무당들의 천신제 같은 축제의 굿이다.





몽골 무당들의 행사장 모습

  

 해가 떨어지면 시작한다던 무당들의 신제는 7시가 넘어서도 뜸만 들이지 시작할 기미가 없다. 몇 겹으로 둘러친 사람들은 기다림에 지쳐 웅성거리며 야유도 보냈지만 주최 측은 끄덕도 하지 않고 다른 곳의 행사가 끝날 때를 기다려 손님을 최대치로 끌어모은다. 사실 나는 기다리다 춥고 배고픔에 지쳐 차 안으로 들어왔다. 따라서 그곳에서 일어난 사건의 전말을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유추해 보건대 그곳에서 축제객들은 길흉화복을 점치는 무당들의 신들림에 취해 시간 따위는 이미 안중을 떠난 상태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샤먼에 대한 몽골인들의 관심이 이처럼 절대적이었나..  생각건대 배움이 짧은 목부이든 가방끈이 긴 대학의 간부급 선생이든 할 것 없이 샤머니즘은 몽골인들의 의식에 깊숙이 닿아 있음을 느낀다. 이처럼 낯설고 이질적인 문화 앞에서 어떻게 몽골을 이해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지금으로선 판단이 서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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