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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스리랑카 Jan 06. 2019

벗들에게

   몽골에서 띄우는 편지


몽골에서 첫겨울을 맞고 있습니다. 열대지방에서는 엄밀하게 말해 봄여름 가을 겨울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적당히 더우면 겨울이고 조금 더우면 가을이며  많이 더우면 봄이고 심하게 더우면 여름입니다. 몽골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8월 말에 눈발이 날리는 광경을 목격했는데 4개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겨울이 시작된다고 하니 몽골에서의 계절의 의미는 셈하기 어려운 과제 중 하나이지요.




드디어 지난주 12.22일 몽골의 겨울이 카운트 다운을 시작했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몽골의 겨울 셈법을 알아보면 12.22일부터 9일씩 나누어 9일이 9번 지나가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온다고 셈을 한답니다. 즉 9 x 9 =81이 지나면 봄이 왔다고 하지요. 대략 3.12일쯤이 겨울이 끝나는 시점인 셈입니다. 조금 더 몽골 사람들이 표현하는 겨울 추위의 정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9일에는 가축 젖으로 만든 맑은술이 얼 정도로 춥다

두 번째 9일에는 양 울타리가 얼 정도로 춥다

세 번째 9일에는 세 살배기 소뿔이 얼 정도로 춥다

네 번째 9일에는 네 살배기 소뿔이 얼 정도로 춥다

다섯 번째 9일에는 널려있는 곡물이 얼지 않을 정도로 춥다

여섯 번째 9일에는 길을 가다가 노숙을 해도 동사하지 않을 정도로 춥다

일곱 번째 9일에는 언덕마루에 눈이 녹아 길이 다시 보일 정도로 춥다

여덟 번째 9일에는 햇볕에 나뭇잎과 꽃이 필 정도로 춥다

아홉 번째 9일에는 따뜻한 온기에 행복이 찾아들 정도로 춥다




긴 겨울을 그것도 영하 수십 도가 오르락내리락하는 12월 절정기의 추위를 싹둑 잘라 첫째 9일로 셈하는 저의가 과연 무엇일까요? 지겹도록 긴 겨울을 견디어 내기 위한 고육지책의 지혜라고나 할까요 지금까지의 추위는 겨울을 맞기 위한 전초전 일 뿐 이제부터 진짜 겨울이 시작되니 봄이 멀지 않았다고 그러니 제발 얼어 죽지 말라고 희망을 노래하라고 셈법은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울란바토르 그것도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몽골의 겨울을 논하기엔 사실 적당치는 않답니다. 왜냐하면 어느 계절보다도 겨울철은 가가호호 온수와 난방 파이프로 연결돼있어 집안에서는 제아무리 춥다고 난리 법석을 피워도 런닝구 하나면 만사 오케이이니 추위가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러나 한 발짝 물러 뒤를 돌아보면 추위에 떨고 있는 무수한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많은 몽골의 겨울입니다. 




이 세밑 어디 거칠고 완강한 사막에라도 들어가 잠시 생각이라도 단련하고 싶은 유혹이 굴뚝같은데 그마저도 마음대로 안되는군요. 몸담고 있는 학교에 휴가를 신청했더니 이번 주가  영하 30도를 넘나드는 강추위라 휴가를 승인할 수 없다나요. 어쩌면 코워커의 농간(?) 일 수도 있겠지만 모른 척 따르기로 했답니다. 누군가가 자기를 염려한다는 것은 온 우주가 지켜주고자 하는 또 다른 방식의 선물이지요. 고맙고 감사할 따름.




 벗들이여 다가오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내 강건하시길. (2018.12.29)                                                                                                                                                                            


                                                                                                                                             


                                                                                                                                                                          


                                                                                                                 










 


   














아내로부터 생각지도 못했던 과분한 선물을 받았다. 김장김치를 필두로 고추장 새우젓 김 북어포 자반 들기름 참깨 표고버섯 등 심지어 강원도 잣까지 일일이 다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바리바리 챙겨 보내왔다. 사려고 들면 몽골 지천에 널려있는 것이 한국 식품이다. 그럼에도 집에서 보내온 밑반찬들을 보면 태생이 다른 것처럼 귀하고 반갑다. 해서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새해맞이 '만두'를 만든다. 잘 익은 김치 한 포기를 썰고 쇠고기를 다지고 두부를 으깨고 양파를 볶아 만두소를 만든다. 낼모레쯤이면 만두소는 적당히 숙성이 되고 맛이 들겠지만 정작 만두를 같이 먹어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아무개 씨나 붙들고 만두나 같이 먹자고 선심을 쓰기도 조심스러운 타국에서의 삶이다 보니 어쩌면 만두는 정초를 축하하는 의미도 잃은 채 오랫동안 냉장고에서 연명하는 신세가 될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새해 첫날은 '만둣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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