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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랑카 Oct 21. 2024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띄우는 편지

5화 스리랑카 인력 송출을 위한 EPS센터 방문기

한 번쯤, EPS TOPIC(고용허가제 한국어 능력시험)을 관장하는 '스리랑카 EPS 센터'를 방문해야겠다고 가볍게 생각했다. 여기서 가볍다고 하는 것은 지나는 길에 잠깐 들러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히 예약 없는 접견이 가능한 정도의 의미이다. 그러나 어쨌든, 사무소에 센터의 방문을 문의한 지 수일 후, 접견 날짜가 하달되어 왔다. 9.30(월) 14:30-15:00, 1시간도 아닌 30분 정도의 접견 시간이다. 또한 방문 목적으로 센터 방문 시 문의할 내용과 EPS센터에 협조를 구할 내용이 있는지 사전에 공유를 또한 요청해 왔다.


'확인하고 싶은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2025년도 EPS토픽 시험일정과 주요 변경된 내용이 있는지 여부 둘째, 스리랑카 EPS합격율 현황(지역별, 학교별, 등등) 셋째, 싱할라어를 탑재한 교재 지원가능 여부입니다' 하며 회신을 보냈다. 한국을 대표하는 두 국가 기관의 방문이다 보니, 사전에 방문 목적을 확인하는 절차는 사실 필수적이라 볼 수 있다. 드디어  9.30일(월) 사무소의 담당 코디네이터, 부소장과 함께 방문 길에 오른다.

 


 센터장 땡땡땡, 부센터장 땡땡땡 님과 함께 회의실에 동석했다. 간단한 소개와 함께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스리랑카 EPS토픽시험의 현황을 최신 정보와 함께 경청했다. 이중 눈여겨본 대목으로 스리랑카의 EPS토픽 합격 커트라인인데, 생각했던 것보다 월등히 높아 순간 놀랐다. 사실 EPS토픽은 읽기 20문항 듣기 20문항으로, 배점은 각각 100점씩, 도합 200점이 만점이다. 합격 커트라인 점수가 180점이라는 센터장의 설명에 다시 되물어봐도 잘못 들은 것은 아닌, 정확히 말해 40문항에서 4문제 정도만 틀리고, 36문항을 모두 맞춰야 하는 고 난이도의 시험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어중간한 실력이라면 차라리 일반 TOPIK시험(한국어 능력시험으로, 일정 점수를 획득하면 등급에 따라 급이 정해지는 시험)으로 3급, 4급을 획득해 한국행을 찾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센터장은 한 술 더 보탠다. 그 말인 즉 EPS시험의 합격하기가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렇다면 이제 한글 알파벳 배워 시험을 보기까지, 정보 부재의 지방 중소도시에서 EPS 수험공부가 결코 만만치 않은 과제라는 점이 명확해졌고, 그 일을 이뤄내야 할 몫이 내게 있다는 것 또한 자명해졌다. 그렇다!!. 그렇다 해도 제아무리 어려워도 해내는 놈은 있게 마련이다. 죽기 살기로 달려들어 예상 시험문제를 달달 외워, 연습 또 연습하면 문은 열리고 만다. 그 뒤 이 몸의 발언 기회가 와 예상했던 질문 중 가장 뜸을 들이며, 사실 첫째의 방문 목적이기도 한, '교재의 무상 지원'에 관해 조심스럽게 운을 띄웠다.


첫 방문에 대뜸 지방 중소도시의 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교재의 무상방법을 요청하며, 진심을 다한 모양새로, 일관되게 읍소했다. 다행히 확답할 순 없지만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매우 긍정적 회답을 듣고 완곡한 승낙의 표시로 받아들였다. 비매품으로 발행된 'EPS-TOPIK한국어 1.2' 두 권의 스리랑카 토씨를 탑재한 페이퍼 책자는 50,000원 정도에 이른다니 놀랍고, 수천 킬로를 날아오는 운송비까지 감안하면, 60여 권 책자의 지원을 받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내친김에, 한 수 더 나가 내년도 학기가 개강하면 학생들의 장대한 목표를 격려해 줄, 가장 마땅한 인물로 센터장님을 초대하겠다고 밝히자 즉답으로 흔쾌히 승낙한다. 역시 큰 분들은  뭔가 다르다. 미래의 벨리아타 EPS한국어 교실의 당사자인 나 역시, 자못 기대가 부풀었던 날, 그날을 기억하며 벗들에게 부푼 소식을 전한다.  



추신: 벗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사족을 덧붙인다. 2023년도 한국 정부와 인력 송출 양해각서를 체결한 17개국(중국, 몽골, 베트남, 미얀마, 인도네시아,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 필리핀, 네팔,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동티모르)의 국가별 쿼터 인력수급 대상 인원은 총 165,000명으로 매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네팔의 37,000여 명 캄보디아의 24,000여 명 스리랑카의 9,000여 명 등이 매년 한국으로 고용되어, 송출되고 있다. 이 절차는 도입 규모 확정, 양해각서 체결이 정부 차원에서 이뤄지고, 송출국가에 포진한 한국 산업인력 공단 현지 사무소에서는 필기시험, 1차 필기 합격자들의 기능시험, 체력테스트, 면접 인터뷰등을 실시, 최종 합격자를 선발해 해당국 고용국에 넘겨준다. 이 자료에 근거해 해당 정부에서는 최종합격자를 발표하는 방식이다. 그 뒤 고용계약체결, 취업비자(E9) 발급, 한국행 비행기를 타는 순서로, 험난하기 이를 데 없는 서바이벌 취업 과정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한국에서 일할 충분한 자격이 있다.        




       






숙소 호텔에서 손가락으로 싹싹 식사를 마친 후, 후식으로  샐러드를 담았다

콜롬보 중심부에서 8km 남짓 떨어진 자나키(hotel janaki) 호텔이, 이 몸의 아지트이자 당분간 지옥이다. 때로는 이곳에서 일주일에 닷새를, 호텔문 밖을 나서지 않은 채 버티기도 한다. 주는 밥에 입맛을 맞추고, 과외 선생이 귀하신 몸 찾듯, 현지어 선생이 몸소 가방 싸들고 이곳 콘퍼런스 룸에 나타나면, 그때부터 블라블라 현지어 강의가 시작되는 패턴이 20여 일을 지났다. 그중 힘든 것 중 현지어는 뒷전이고, 다름 아닌 이곳에서 삼시 세끼를 해결해야 하는'끼니 때우기'가 첫째이다. 시원한 물김치에 포슬포슬한 밥이 사무치도록 그립고, 혼미한 정신줄을 잡아줬던 커피 카페인의 기억도 점점 사라지면서, 버티기 위해 꾸역꾸역 집어넣은 이곳 음식들이, 어느 한날, 도저히 못 견디겠다고 거부하면서 분에 넘치는 설사를 쏟아냈다. 그 뒤 위와 장을 때로는 설사약으로, 또 때론 마음의 주문으로, 달래고 위로하면서 몸이 받아주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리고 드디어,  10.10(목) 저녁, 비장한 결단으로 수저대신 손가락을 사용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유인즉, 오감을 동원해 고생하는 장기(주로 내장 부위)들에게, 이 몸의 의지와 격려를 보내는데, 그보다 나은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 우선 손을 단정히 씻고, 경건한 오른손으로 조물 조물 반찬과 밥을 섞어, 입안으로 밀어 넣는다. 그런데 첫 숟갈에 이게 무슨 조화, 갑자기 눈시울이 시큰하더니만 왕방울 눈물이 뚝하고 떨어진다. 결코, 눈물 떨굴 대목이 아닌데 멘틀이 알아서 겨, 고생했던 위장에 보내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그 어떤 소화 효소보다 강력한 지존의 손가락이라도 빨며, 낯선 음식의 시름을 이겨내고 싶었던 것이다. 결코 배반하지 않은 나의 장기들.. 그 후 어느 날 아침, 묵직한 신호가 잡혔다. 시큰 달큰한 커리향의 똥을 밀어내면서, 안도의 숨을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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