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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벨리아타에서 띄우는 편지

1화 이제 겨우 버스를 탈 줄 알아요

by 노마드 파미르

바닷 마을 탕갈레에 거처를 정하면서 드디어 단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첫 출근 7:30분, 예의상, 단벌뿐인 양복을 차려입고, 버스를 타고, 정확히 12분 후 이웃마을 벨리아타에 위치한 학교 앞에서 내린다. 아직은 눈에 익지 않은 풍경이라 랜드 마크가 될 건물을 찾느냐 달리는 차창에 눈을 부라리지만, 단조로운 시골 풍경이 오히려 내려야 할 정확한 지점을 방해하는 그런 형국이 며칠 이어졌다. 그리고 이제는 제법 여유롭게 공영 로칼 버스에 오른다.


8:15분, 슬금슬금 교실에 있던 학생들이 정문 입구 유리 박스에 안치된 부처님의 흉상 앞에 모여들기 시작한다. 이름하여 하루를 시작하는 첫 순서로 아침 조회 시간. 부처님께 고하는 우리의 각오쯤 될까 통일된 염불이 2~3분간 이어지고, 이어서 스리랑카 국가를 제창하면서 조회가 끝난다. 그나마, 교장의 훈시는 없는 가운데 뿔뿔이 흩어져 교실로 향한다. 8:30분 첫 수업이 시작한다.


별도의 사무실 없이 한국어 교실이 곧 나의 수업장이자 집무실이다. 그 옛날 첫 파견지 태국에선 영어 선생들과 같은 사무실에 책상을 지원받아 그런대로 끈끈한 유대감을 갖고 생활했었고, 몽골에선 대학원답게 2~3명씩 배치된 연구실에서 제법 폼 재며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이곳 스리랑카의 작은 농촌 마을 벨리아타 직업학교에선 수업 교실이 곧 사무실인 경우에 이르고 만다. 어쨌든 현재의 스리랑카 상황이 모든 것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겨야 될 것이다. 그들의 정부 곳간은 비어있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 산적한 가운데 사무실 타령은 일견 사치스럽다. 그럼에도 한국어 교실에 좀 과하게 비난을 퍼부어야겠다.



2018년을 끝으로 단원파견이 중단된(스리랑카 소요 사태 후 코로나 펜데믹으로 이어진다) 교실엔 쓸만한 학습기자재는 뿔뿔이 흩어져 남아난 게 없고, 그 옛날 이곳을 거쳐간 선생들의 흔적만 이곳저곳에 낙서처럼 있을 뿐이다. '2010년 한국어 교실 현장 사업장'이라는 플라스틱 안내판과 함께 한복을 차려입은 선남선녀의 조악한 그림과 기둥과 기둥사이 벽면에 한국의 탈이라는 표지와 함께 , 뽀얗게 먼지를 먹고 있는 십 수어개의 한국산 탈바가지를 보면서, 굳이 이런 그림, 이런 탈이 한국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는가에 생각이 머물면 눈살이 찌푸려진다. 생각 같아선 당장이라도 탈바가지는 끌어내리고 조악한 그림들은 페인트로 흔적을 지우고 싶은데, 그래도 전임 단원의 손길이라 차마 어쩌지 못한다. 이곳에 국민의 혈세로 지원되는 '현장 사업 프로젝트'의 단골메뉴인 시설의 개보수 부분은 학교 측에 맡기고, 예산 부족으로 시행하지 못하는 사업 중 한국어와 연계점을 찾을 수 있는 프로젝트의 발굴 일 순위에 올렸다.



즉, 가장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학교의 문제는 무엇인지, 그 가운데 코이카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 이곳에서 잔뼈가 굵은 교장과 부교장, 선임 인스터럭터인 코워커, 그리고 이 몸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 보자고 학교장에게 제안을 하기에 이른다.


현장 사업의 지원이 결정되는 것은, 본 단원의 파견분야와의 연계성, 왜 이 사업에 예산을 투입해야 하는 타당성, 코이카 목표의 부합성등 여러 부분을 검토하여 지원여부가 결정되겠지만, 너절한 교실이 꼴 보기 싫다고 바닥에 카펫 깔고, 페인트로 도배하는 천편일률적인 현장 사업은 단연코 사양하겠다.


수혜기관이 가장 원하는 지원이 무엇이며, 향후 지속적이고 실질적인 방안은 또 무엇인지, 그리하여 모두에게 도움이 될지를 곰곰 생각해 보며, 랑카에서의 11월을 설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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