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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벨리아타에서 띄우는 편지

3화 우리 집주인 아저씨

by 노마드 파미르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를 추모합니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진심으로 빕니다.









호사가들이 즐겨 정의하는 스리랑카 사람들의 특징 중 '게으르다, 낙천적이다, 힘든 일 싫어한다'는 소견은 일견 맞기도 하고 틀린 단정이기도 하다. 사실 어느 한 민족을 일방적 한 묶음으로 단정 짓는 근거는 찾을 수 없기에 전제 조건이 잘못된 그저 상투적 표현일 뿐이라고 이 몸은 무시하는 편이다. 열대 지역이라고 해서 모두 놀고먹는 게 아니고 바쁜 사람, 쉬는 사람, 다 저마다의 사정을 안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군상일 뿐인데, 굳이 그렇게 표현하는 것은 아주 실례되는 생각이다. 스리랑카에서 만난 사람들 중 오늘 벗들에게 소개하는 집주인은 아주 전형적인 스리랑카 시골 명문가의 자제로 평생 올곧게 인생을 산 분이라 여러 벗들에게 일 번 타자로 소개해 올린다.



우리 동네 랑카 사람들을 관찰해 본 바, 너나 할 것 없이 아침이면 대나무 빗자루로 마당을 박박 긁듯이 쓸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몸이 세 들어 있는 집도, 마당에 떨어진 망고 나무의 넓은 잎사귀와 기타 활엽수의 잎이 지면서 정원에 흩뿌려져 있는 나뭇잎을 가지런히 모으는 1959년 생 주인장의 비질 소리와 함께 이른 아침이 열린다. 더 자세히 관찰해 보면 이 주인장은 사실 비질로 정돈된 마당을 매우 좋아하는 것이다. 마치 산사의 흙마당을 쓸면서 마음을 정리하는 스님들의 일과와 닮아 있다. 이 사람의 과거는 어떠했을까 또 미래에는 어떤 꿈을 꾸고 있는 걸까 그 옛날 부모님 인솔하에 사진관에 들려 함께 찍은 흑백사진, 조금씩 장성하는 모습을 담은 흑백 사진틀 속에 담겨있는 그의 과거를 아주 조심스럽게 유추해 보지만 정확한 내막은 모른다. 다만, 그가 내뱉은 말들의 조각과 편린을 모아 구성해 보면, 젊은 시절 스리랑카의 자유를 위해 싸웠다고 하는데 1948년 독립 후 혼란기를 거치면서 활동했던 것으로 추측될 뿐이다.



그 뒤 어떤 경로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 사람이나 나나 파헤쳐서 좋을 게 있고, 덮고 넘어가야 할 부분도 분명 있기에, 궁금하긴 해도 더욱 입조심을 한다. 어쨌든 그렇게 그는, 평생 자식 농사는 짓지 않고, 십 년 연하의 아내와 함께 기도와 명상하는 일이 전부인 것처럼 생활하고 있을 뿐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강요로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는데, 생업에 약간의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결코 그는 랑카의 땅을 떠나본 적 없는 토박이에다, 세상에서 랑카가 가장 아름다운 섬이라고 자부하면서, 정부 관리들의 행정이 못 마땅하면 그 누구에게라도 대드는 대꼬챙이 같은 성품으로 랑카를 지키고 있다. 가끔 그와 술잔을 기울이며, 그는 내게 속삭인다. 당신은 참 묘하다. 아주 오래전 우리는 전생에 인연이 있어 이렇게 익숙하며 친밀감을 느끼고 있다고 잘라 말한다. 해서 명상에 잠겨 축복을 부르는 의식을 할 때면, 이 몸 역시 아주 먼 인연생(因緣生)의 바다로 헤엄치는 상상을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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