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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벨리아타에서 띄우는 편지

4화 희망의 공수표

by 노마드 파미르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를 추모합니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진심으로 빕니다.




11,12월은 본격적인 수업이 없는 관계로, 학교 교직원들의 '교양으로서의 한국어 초급과정'을 가르치고 있다. 그래도 수업은 수업인지라 여러 버전의 제일 하위 버전을 선택해 스리랑카의 언어로 토를 달고, 그것도 부족하면 영문으로 설명된 문법 내용을 첨부해 스리랑카 버전을 만들어 진행하고 있다. 가르쳐보면 확실히 젊은 학생들은 총기가 살아있어 배우는 속도도 빠르고, 하나를 알려주면 금방 응용력을 발휘해 다음 순서를 쉽게 알아챈다. 문제는 나이 든 사람들의 언어 배움 속도는,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 진도만 나가다 보면 이전 배운 것들이 자동으로 지워져 쉽게 나가지 못하고, 자꾸 리뷰를 반복하다 보면, 또 속도를 잃고 만다. 해서 사실 긴장감을 누그려 뜨리고 진행하는 방식이, 이 수업의 장점이자 딜레마이다.



그 수업과 병행해 초안을 만들고 있는 과제는, 이름도 거창한 '현장 사업'이라는 제안서이다. '현장 사업'이란, 말 그대로 파견된 기관의 교육환경 개선, 개발 또는 숙원사업 중 두 기관이 협력하여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경우를 말한다. 규모가 방대하고 여러 기관의 협조와 조율이 필요한 사업은 사무소의 전담 팀이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반면, 코이카 일반단원들은 비교적 파견 분야를 중심으로 소규모 프로젝트 사업을 발굴, 제안, 진행을 하고 있다. 소규모라 해도 대략 집행되는 예산은 10,000~20,000불 정도라 결코 작다고마는 할 수 없다. 따라서, 코이카 사업으로 여러 분야의 필요 요구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제안서와 함께 몇 단계의 본부의 심의 과정을 거친 뒤 승인이 이뤄지면, 사업이 진행되는 프로젝트를 이곳에선 '현장 사업'이라 칭한다.



제안서 작성도 만만치 않은 과제이긴 하지만, 무엇보다 적게는 몇 달에서 반년 정도를 이 일에 매달리면서 필요한 사업을 진행해야 하는 경우를 봐온 터라, 생각은 있어도 선뜩 일을 벌이기 두려운 것 또한 이 사업의 특성 중 하나다. 그럼에도 이곳 스리랑카에 파견 오기 전, 연도별로 코이카 사업내용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백서'에 수록된 한국어 교육 단원들의 현장 사업을 찾아보았다. 즉, 천편일률적으로 한국어 수업장의 환경 개선에 초점이 맞춰져, 교실 도색 공사, 바닥치장 공사, 수업 기자재 구입, 기타 등이 단골메뉴로 맞춰져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결코 이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너무 올드한 방법 아닌가 스스로 반문하면서, 어떤 식의 모델이 가장 적합한지를 여러 경로를 탐색하면서 이곳에 이르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른다. 적어도 독자적인 교실에, 한국어 수업만을 위한 프로젝트 투자는 투자 대비 환급성으로 치환해 볼 때, 매우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것으로 판단된다. 즉 한국어 수업이 이뤄지지 못하는 경우, 그 교실은 급속히 죽은 공간이 되어 더 이상의 교실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린다. 그렇다면, 대안으론 복합시설 속에 한국어 교실이 존재할 수 있다면 의미 있는 투자가 될 수도 있다.



수혜 기관이 필요로 하는 수요의 곡선과 만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은 어떤 것이 있을까 그 접점의 제안을 학교장과 논의하는 자리에서 도출해 봤다. 그중 하나, 그것은 공용 컴퓨터가 단 한 대도 없는 컴퓨터실을, 한정된 예산을 투입해 '한국어 정보센터'(가칭)로 개조해 보는 작업이다. 그 구상은 이러하다. 전기, 통신, 기타 부속 장비일체가 구식이긴 해도 골조는 살리고 내용물만 교체한다. 즉, 데스크 탑, 복합 프린터, 빔 프로젝터, 스크린, 한국어 및 문화 관련 책자, 소프트웨어의 구입등은 코이카의 예산(90%)으로, 컴퓨터용 책상, 전기, 통신, 부속 장비의 수리 및 구입은 학교 재정으로(10%)으로 충당한다면, 양쪽이 윈윈 하는 전략이 나올 수 도 있다는 희망이다. 문제는 이곳을 이용하는 교육 그룹이 한국어 교육생, 컴퓨터 강좌교육생, 기타 컴퓨터 관심 학생, 한국문화 관심 학생 등으로 자칫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장소가 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문제가 남긴 했다. 그럼에도, 이곳을 이용하려는 학생들의 진정한 수요가 무엇인지 파악해 보고, 그 결과에 따라 사업을 추진해도 충분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수개월 뒤에 도전할 (현장 사업은 내년 상반기에 공고가 나온다) 사업을 러프하게 구상해 봤다. 한편 머릿속에는 한 달에 한 번은, '한국 영화를 상영'한다는 공지를 학교 게시판에 올리는 상상을 하면서, 학교장을 비롯한 모두가 가불한 희망의 공수표를 맛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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