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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벨리아타에서 띄우는 편지

6화 기묘한 입학식 풍경

by 노마드 파미르



아직도 내란의 소용돌이 속에 하루하루를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벗들에게 위로의 노래를 전한다.'우리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가, 끝내 이기리라' 모두 강건하시길.




문화 충격의 4단계 중 허니문 단계를 지나 협상단계(Negotiation Stage)에 들어서면 막연히 새롭던 호기심은 더 이상 긍정적 관심을 창출하지 못하고 언어 장벽, 혼란스러운 문화적 차이로 인해 슬럼프 단계에 돌입한다고 하는데 그 시기가 지금일 수도 있겠다. 그 이유로 요 며칠간 연말을 전후로 치러지는 다양하지만 결코 유익하다고만 할 수 없는, 몇 개의 행사를 경험하다 보니 도대체 이 사람들은 무슨 연유로 이처럼 재미없는 일에 한결같이 몰두할 수 있는지, 시간만 된다면 연구과제로라도 삼아 속속들이 파헤쳐보고 싶은 충동마저도 들게 한다.



그중 하나, 새 학기 입학식 풍경을 조금 지루하게 때론 장황하게 벗들에게 고해바친다. 가급적, 있는 그대로 사족 없이 묘사할 수만 있으면 좋으련만 나도 모르게 꾹꾹 눌러 담은 불만에 찬 속마음이 삐죽 고개를 내민다 해도 너그럽게 봐주기를 기대하면서 입학식장으로 향해본다. 때는 바야흐로 새 학기 첫 시작날 1.6일(월), 바로 어제 일이다. 지난주 학교장으로부터 입학식이 있다는 통보에 따라 이 몸도 와이셔츠, 넥타이, 양복, 구두로 일체 된 정장으로 예의를 갖춰, 수업준비와 함께 학교에 도착한다. 그리고 다 큰 성인 학생들을 데리고 등교하는 학부모들을 보며 의아해했으나, 이들이 곧 식장에 참여하는 하객이라는 것을 9:00시 돼서야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식장을 가득 채운 학생과 보호자들은 곧이어 장장 3시간에 걸친 진절머리나는 입학식을 경험하게 된다.



아무리 길게 잡아도 한두 시간 이상, 행사를 경험해보지 못한 이 몸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광경 앞에 아연했다. 어떻게 이렇게 길고 지루한 입학식을 거행할 수 있는지,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연출이다. 여러 다양한 이벤트가 섞여있어 시간을 소비한 것이라면, 또한 유치하지만 찬란한 재미에 넉다운된 시간이었다면, 그래도 참아 줄 수가 있겠는데 이건 아니다라며 마지막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부글부글 속앓이를 경험하기에 이른다.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백번 양보해 입학식에서 다룸 직한 과제를 넓게 본다 해도 주제는, 몇 가지면 족하다. 즉, 학교의 방침과 학생들의 준수사항 그리고 격려사항이면 차고도 넘친다. 학교운영을 책임진 고위층 선생들의 정견발표 모양새처럼, 마이크를 잡는 시간을 재어보니 부교장 10분 남짓, 각 학과장 5~10분 남짓, 그중 백미는 마지막 순서에 배치된 교장의 스피치로, 정확하게 타이머로 59분50초로, 거의 기절할 뻔했다.



전혀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었지만 이처럼 진심을 다해 지루하게 연설을 해내는 이 사람들이, 순간 무섭기까지 하다. 왜 이들은 이처럼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고는 1도 없이, 자기들의 서사만 지껄이고 있는 걸까 그리고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어찌 그리 장황함을 곁들여야 하는 걸까, 나는 이 소사이어티가 너무 지겨워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고 만다. 나는 지금 통제된 생각으로 길들여진 사회의 단면을 본 것이고, 상당히 비효율적이고 이상한 입학식을 치러내는 오늘날의 이 모습에, 그들이 치유하고 극복해야 할 과제가 담겨있다는 섣부른 결론을 내린다. 그 이유의 근거는 이렇다. 설사 아무리 영양가 높고 고매한 스피치도, 정교하고 빈틈없는 완전무결한 이론이라 해도, 실천과 행동이 따르지 않는다면, 뒹구는 쓰레기와 같이 소용이 없다고 설파했던, 인간 예수의 가르침을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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