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03. 오후 22:28분, 어느 미친 계엄령이 발령되었다. 천우신조(天佑神助), 2024.12.04 오전 01:01분경 비상계엄해제요구결의안이 가결되고, 2024.12.04. 오전 04:30분 비상계엄이 해제되었다. 실패했기 망정이지 하늘의 도우심이 없었다면, 생각만 해도 구역질 나는 세상에서 말년을 보낼 뻔했다. 더 이상 정치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행위는 수천 킬로 떨어진 이곳에서도 금기시되는 불문율이라, 혼자서 끙끙 앓을지언정 소주 한잔 앞에 놓고 한탄할 친구 또한 전무하다. 해서 상한 마음을 다스리고자 혼자서 때로는 연이 닿는 단원들과 짝을 이뤄, 이곳저곳 발길 닿는 대로 싸돌아다녔다.
그동안 싸돌아 다닌 지역을 열거하면 이렇다. 인근지역 마타라(MATARA), 함반토타(HAMBANTOTA)는 멍하게 버스에 타고 졸며 가는 단거리 멍 때리기 여행 , 남부 해안도시 중 유일하게 일본 품종의 쌀을 구할 수 있는 갈레(GALLE) 항구의 쌀팔러 가기 여행 , 여러 단원들과 비교적 고가의 비용이 드는 여행 상품을 N분의 1로 경험할 수 있는 얄라(YALA) 국립공원의 사파리 여행 , 그리고 스리랑카 해발 고도 1000m 산악고원지역의 중심도시 엘라(ELLA)의 나인 아치 브리지(NINE ARCH BRIDGE) 보러 가기 여행 등 비교적 짧은 기간에 이곳저곳을 경험해 봤다. 다행히 이곳 랑카의 교통체계는 나름 정교하게 공영버스 노선으로 촘촘히 짜여 있어, 럭셔리한 여행은 기대할 수 없어도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싼값에 이동이 가능하다. 대략 100km를 이동한다 해도 500루피알(2500원) 정도이다. 단, 자리를 확보하는 예약수단은 아예 없으므로 복불복, 앉아가는 승객은 여유롭게 잠까지 청할 수 있는 반면, 자리 없이 통로에 서서 가는 승객들은 지치고 피곤한 여행일 따름이다. 결코 누구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때로는 앉기도 하고, 때로는 통로에서 흔들거리며 몇 차례의 여행을 다녀왔다.
그럼에도 좋은 경치 앞에서, 환호성을 지르는 광경 앞에서도 결코 즐거워할 줄 모르는 자신을 발견하곤 때론 소스라치게 놀란다. 어쩌다 이지경까지 온 것일까, 큰 기대 없이 시름이라도 달래볼 요량으로 나선 발길이 생각보다 무겁고 처연하다. 역시 여행은 자부심으로 가득한 자랑스러운 시절에나 어울리는 한낱, 부르주아풍의 취미일 뿐인가, 시름을 달래줄 수단은 결코 되지 못한다. 벗들 또한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