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그해 겨울, 평화로운 일상을 꿈꾸며
스리랑카의 생활이 4개월을 넘었다. 정확하게 날짜를 못 박고 파견 생활을 이어가는 계약자의 신분을 감안한다 해도, 평범하고 특별히 기억할만한 일도 없는 작은 일상이 계속되었던 지난날, 온종일 비가 내리며 그 푸르던 파도가 누런 흑탕물에 물들었다고 투덜대던 지난 몇 달 전의 일이, 지금은 더없이 사치스럽고 소중한 기억으로 자리 잡는다. 느닷없는 본국의 환란 앞에 보기 좋게 개박살이 난 일상의 모습 때문이다. 이역만리 먼 곳이라서 '당신은 그나마 아주 많이 다행입니다'라고 단정 지을지라도, 그럼에도 상처를 입고 신음 중이다.
국가의 위상은 곧 그들의 자존감이다. 그 자존감은 영토를 넘어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단원들의 보이지 않는 무기이며, 스스로를 지키는 평화로운 방패 그 자체이다. 그들이 열정을 바치며 낯선 사람들 속에 매진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이곳 작은 어촌가에 자리한 직업학교에서, 그들이 그토록 꿈꾸던 '코리아 드림'의 환상에 기꺼이 동참하고 싶었던 소박한 바람마저도 잃지 않을까, 내심 걱정이 하루하루를 점령하는 랑카에서의 일상이다. 또한 동시에 브런치의 매거진이라는 연재 형식을 빌려 평화로운 바닷가에서, 허접한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각색해 심심풀이용 얘기를 들려주고 싶다던 이 몸의 작태가 더없이 한심하기 짝이 없어진 것도, 계엄령이 남긴 유산이 되었다.
커밍아웃을 하든 안 하든, 정파의 색깔을 드러내던 감추던, '대한민국'이라는 뿌리를 갖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지지고 볶을지언정 범세계화 기준으로, 한통속이다. 결코 나라를 절단내고 쪽박 차고 싶은 사람은 단연코 없다고 믿기에 더욱 그렇다.
사실, '걱정하지 말아요'하며 잘 수습이 될 거라는 희망의 소식을 들어도 솔직히 불안하고 때때로 울화가 치밀기도 한다. 그것은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황당한 사태를 경험한 직후라, 혼란스러운 마음속 소용돌이를 벗어나지 못한 까닭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미덥지 못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아직도 세상은 살만하며, 불의에 맞서 정의가 승리할 것으로 믿는가?라는 물음에 '어브 코오스! 희망을 담아 기꺼이 예스입니다'라고 벗들에게 고백하면서 이 연재를 마친다. 좋은 시절 다시 찾아뵙겠다. 벗들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