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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영 Dec 15. 2021

시처럼 마음처럼 그리움처럼

오늘의 인문학 낭송(4분 43초)

인문학의 대가 김종원 작가님의 글 출처

퀴사스 퀴사스 퀴사스 팬플룻 음악과 함께 합니다.

1. 다 늦은 밤 12시가 지날 때 아래층 집 같은 방 같은 위치에서 또 물이 샌다는 할머니의 다급하고 짜증스러운 전화통화로 들려오는 음성이 내 마음을 잡는다. 밤새 보일러를 잠그고 수도도 단수하라며 할머니는 처한 상황에 앞서 답답해하는 언성을 보이시는 게 나로서도 황당하고 마음이 편치 않다. 일단 설비 기사님이 오시고 일어난 현상이 파악되어야 출근을 하던지 결정해야 한다.


물론 내가 그 입장이 된다 해도 참 불편할 일이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 보아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내가 물을 새게 하는 것이 아니고 사물들에서 일어나는

일이라서 그 누구라도 미리 예측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성품은 처음 뵈었을 때 그대로 변하지 않는다. 수리 하실 사장님이 일정이 있으신지 목요일에 공사가 가능할 것 같아 우선 보일러 온수 밸브를 잠근 후 따뜻한 물을 쓸 일이 있을 때 밸브를 조절하며 쓰는 것 외에 난방 사용도 가능해서 견딜 수 있다. 딸애는 오늘 코로나 접종 3차를 맞기로 해서 자신의 방이 다시 뒤집히고 며칠은 거실에서 생활을 해야 하므로 이래저래 흐르는 시간만이 오늘의 불편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내부는 고쳐도 속을 진단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 바로 이럴 때 라는걸 크게 실감한다.


2. 회사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오후 길에 집 근처 마트에 들러 그곳에서 가장 비싼 딸기 두 상자? 를 샀다. 회사 근처 마켓이 싱싱하고 값도 더 좋았을 텐데 동네 마트의 가격이 못해도 하나당 3천 원 이상은 비싼것 같다. 내가 이렇게 가장 예쁜 최상의 딸기를 주저 없이 선택한 이유는 바로 오전 10시 30분부터 약 20분 동안 요양병원에서 휴양하고 계시는 친정 아빠를 뵈러 갈 거기 때문이다. 사실 아빠는 우리와 머무는 시간에 많이 드셔야 3개 정도 드시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늘 아빠가 그랬듯이 아빠를 돌봐주시는 선생님들께 드리고 싶은 마음이라서 그렇다. 물론 병원 측에서 안된다며 사양 규정을 말하겠지만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통한다는 게 어찌 모든 게 안될 수 있나. 그저 아빠를 느끼듯 그분들이 하나씩이라도 향긋한 비타민을 드실 수 있게 좋은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


아빠께 드릴 소고기 영양죽도 준비를 했다. 가끔 밥이 드시고 싶다는데 입원하신 2달 전부터 지금까지 죽으로 식사를 하신다는 말에 얼마나 마음이 뭉클해지던지 아침 출근길에 따스히 데워 사랑하는 아빠와 이야기 나누며 함께 드리는 짧은 시간 동안에 우리는 긴 여행을 떠나듯 못다 한 것들을 서로에게 아낌없이 나누는 시간을 보내야 하니까. 벌써부터 아니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눈물 파이프가 저절로 움직이며 또 눈물이 가득 찬 밤을 맞이한다. 나는 이렇게 지성의 길에서 발견한 삶의 언어와 마음이 있으므로 울 수 있어서 또 행복한 지금을 보내며 살아갈 수 있다.


202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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