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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영 Dec 19. 2021

그대라는 바람에 마음을 묻습니다.

오늘의 좋은 글 낭송 (7분 53초)

지성 김종원 작가님의 글 출처

대황하 ost와 함께 듣습니다.^^

웃는 얘기를 해야 하는데 지하철 12코스를 타고 집에 오며 잠시 전철안 의자에 앉아 두 눈을 감으니 어느새 또 뜨거운 눈물이 줄줄 흘렀어요. 뭐 힘들다거나 마음이 아프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그저 기대일 수 있는 내 삶이 감사해서 그런 거라고 말하고 싶어요. 나는 가끔 지하철 의자에 앉으면 꼭 그런 기분이 들기도 하니까요. 잠시 실크로드를 떠나는 대황하라는 특별한 리듬이 내 온몸을 따라 지나가는 강물과 기나긴 길이 되어 잔잔히 흐르는 물결처럼 낙타에 짊어진 보부상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인간이 지닌 삶이라는 운명의 여정을 거닌 듯했습니다.


언니랑 친정 엄마께서 시장을 보고 올해 75세가 되시는 엄마의 생신 상을 푸짐하게 준비해주셨어요. 미역국과 낙지볶음 그리고 연근 구멍에 돼지고기를 넣어 계란물을 입힌 동그랑 땡처럼 보이는 전과 당면 대신에 팽이버섯을 가닥 내어 시금치와 파프리카 노랑과 빨강을 채 썰어 만든 버섯잡채 와 새우 그리고 브로콜리와 바게트 빵을 곁들인 감바스 요리 그리고 올케가 해온 소 불고기와 샤인 머스켓 포도 굴과 케이크까지 두 번에 걸쳐 상을 바꾸며 친정엄마 생신을 온 가족이 축하해 드렸답니다.


아빠가 계셨더라도 어쩌면 따로 보냈을 수도 있는 친정 가족 모임 겸 자리를 만들고 내가 더 마음이 놓인 건 어떻게든 남동생과 자리를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인 것은 가족이 모이면 우리 애들은 늘 용돈을 풍족하게 받는데 나로서는 늘 여의치 못하게 주는 것과 편한 일상의 안부나 대화를 나누지 못하게 되는 단조로운 불편한 일들이 내 맘과는 다른 일상의 모습이 되어 친정을 다녀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언제나 답답한 마음이 함께 했으니까요.


예를 들어 용돈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어차피 주고받는 게 될지라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가족과 어른이 내미는 내일의 희망과 반가운 기운을 주듯 한 번쯤 흔쾌히 지갑에서 시원한 용돈을 주려는 마음을 모르는 것도 참 가슴이 아파오는 일이라서 어떠한 과정들을 거치고 스치며 이번에는 엄마 생신과 언니 집들이 귀한 친정 동생 조카들에게 그나마 넉넉하지 않더라도 조금 더 의미를 담아 고루 마음을 전할 수 있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그래 내가 이대로 잘 살고 있구나 그저 조용히 눈을 감아야만 집까지 돌아올 수 있었으니까요.


나는 이제 무엇이든지 삶에서 일어나고 생기는 일들을 두려워만 하지 않습니다. 일어나고 또 생각하고 풀어가며 살아가려는 마음과 머리로 기억하는 영혼의 용기를 낼 수 있으니까요. 나는 지하철 안에서 절대 혼자가 아니라서 행복했어요. 눈을 감아야 보이는 한 줄기 빛이 내 곁에서 나를 비추는 햇살의 온기가 되어 그 숭고한 생명의 숨결을 온전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죠.


나는 이런 내 삶이라서 행복하고 자랑스럽습니다. 그토록 원하던 가능의 세상을 지성의 언덕에 올라 나는 보았고 추구하며 살 수 있음이 얼마나 가슴 뛰는 삶의 진실이며 간절한 이야기인가요. 늘 덕분입니다. 제가 찾던 그 세상이 이곳에는 분명 있으니까요.


2021.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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