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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가 하나의 근사한 세계가 된다는 것

오늘의 낭송 (5분 6초)

by 김주영 작가

너에게 가장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천천히 일어서기

너의 무대가 초라하다고 불평하지 마

하루 한 장 365 인문학 달력 낭송

김종원 작가의 글 출처

모처럼 휴무일에 외출하지 않고 서서히 하나씩 두 개의 욕실을 청소하고 내가 먹고 싶은 반찬으로 열무김치를 만들려고 자주 배달시키는 마트에 문의하였으나 열무는 없다고 했다. 매일 시장으로 걸어가는 일이 이렇게나 오랜만인지 추운 겨울날 얼어붙은 눈길과 가을날 거닐던 은행잎들이 쓸쓸하게 뒹굴던 기억이 하나둘씩 떠오르는 참으로 오랜만에 그리 길지 않지만 넉넉히 멈춘 듯 흐르는 자유가 거리를 휩쓸고 지난다.


생각보다 열무의 가격이 비싸지는 않았다. 한 단에 5.000원을 주고 당근 하나와 깐 마늘 2.000원어치를 샀고 크게 맛과 형식에 따르지 않더라도 기본양념을 떠올리며 그저 푸르게 삼삼하게 만들 예정이다.


액젓 대신 어머님께서 만들어주신 만능 국간장이 있어서 다른 반찬을 만들 때도 간과 맛을 살릴 수 있기에 선뜻 야채를 구입하고 싶었는지 베란다에 앉아 수돗물을 매우 약하게 졸졸 틀어놓고 풀냄새 나는 야채를 다듬는 순간들이 그들의 모습대로 그저 고요했다. 가끔은 작은 일에 감사하고 조그만 행복이 더 그리워지는 것은 내 마음의 고독이 그러한 것들을 그토록 간절하게 찾는 모양이다.


최근 들어 아니 조금은 오래전부터 글을 쓰거나 읽을 때 시야가 뿌옇게 분산되며 그리고 글자가 희미해 보이지만 그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다. 나의 이런 아픔을 누군가에게 말한다는 일 조차도 겸손한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다만 그런 것쯤은 내 생활에서 전혀 구애받지 않으며 내가 글을 쓰는데 집중하고 있다는 강한 신호이니까, 조수미 선생과 나의 지성이 걸어온 세월이 간직한 글을 따라 보며 내 마음에 눈물이 또다시 뜨겁게 흐르고 말았다. 그래, 내 자리 내가 머무는 곳에서 난 이미 충분한 사력을 다해 살아가고 있으니까.


어느 날 가진 두 눈이 나에게 말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잘 성장하고 있다는 시력을 바친 시간과 노력과 눈물로 보낸 나날이 내게 보내는 감사한 증거다.


202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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