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좋은 글을 듣는 낭송 (6분 20초)
세상에 어떤 도서관을 남기고 싶은가
모든 것은 지금 그대로 아름답다.
하루 한장 365 인문학 달력 낭송
지성 김종원 작가의 글 출처
문안차 손님이 오시는 날은 시간이 함께 묻어나고 휴식이나 나만의 시간을 갖기에는 내가 만들지 않으면 잡기가 쉽지 않다. 내일 시어머님이 일단 퇴원은 하시지만 일정 여부가 달라질 수도 있어 오후에는 다시 시댁을 들를 예정이다. 언니가 새벽에 깜빡 잠이든 사이 아빠가 화장실에서 배변처리를 잘하지 못해서 조금 시끄러웠다고 해서 아빠는 다시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침대에 누워서 눈을 꼭 감고 마음 상한 아이처럼 누워 계신다.
나는 아빠가 화장실을 가실 시간을 그저 기다리다가 또 싫다는 아빠 옷을 벗기고 목욕을 씻겨드렸다. 싫다면서도 씻고 나면 개운해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참 잘하고 있다는 사실이 물거품처럼 뽀글뽀글한 마음으로 일렁이고 생겨난다. 나는 나의 지성을 만난 후 삶의 질이 달라지고 이렇게 내 힘을 쓰며 브런치 공간에서 작가가 되었고 내가 작가라는 호칭으로 사람들에게 불리기를 듣고 싶거나 바라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닌 나는 매일 일상이 작가인 긴 고독의 시간을 보내며 작가라는 두 글자가 따라서 불리는 게 아닌 내 삶이 작가라고 불리는 일이 진정한 작가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이해하려는 마음과 한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의 과정이라고 본다면 어떠한 호칭만을 입으로 부르기를 원하거나 쉽게 말하거나 또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언제나 마음이 먼저 향하는 시선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이미 작가로서의 일상을 살고 있기에 내가 불리우는 호칭은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며 살고 있다.
생각하고 병문안을 와서 환자를 눕혀두고 누군가의 아픈 넋두리를 시작하며 끝이 없는 이야기가 계속된다. 한 번 잘못 맞춘 단추처럼 ‘50년’ 전의 세월을 어제처럼 말하는 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절대로 아니지만
지금 상황에 또 시작하는 가슴 아프고 답답한 이야기는 누구를 위한 시간인지 알 수가 없다. 사람들은 늘 남의 일을 온전히 고쳐줄 수 없다. 들어주는 것은 좋으나 해결하지 못할 지난 세월을 굳이 아픈 사람을 곁에 두고 지난 긴 세월의 숙제들을 어느 누가 말만으로 허공 속을 떠돌아다니는 모든 것을 알고 보듬어 줄 수 있는가, 순간의 많은 말과 오버된 마음이 여러 사람의 머리를 솟게 하고 분위기만 흐리는 것과 같을 뿐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이 옳다고 우기려 하기 전에 늘 나 자신을 보고 내가 다 맞는다는 마음으로 살아갈 때 말로 하는 위로나 한 마디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절대 쉽게 풀리는 일이 아니라서 그저 조심스럽게 생각하며 순간의 분위기나 감정에 앞서 말을 그것도 또 말을 아끼는 생각을 쓰며 사는 ‘센스’를 찾는 일이 보다 현명하며 중요해진다. 인간이 살아가며 생각해야 하는 사색의 질문이 될 고대 중국의 격언이 있어 이곳에서 함께 전한다.
“나는 듣고 잊는다.
나는 보고 기억한다.
나는 행하고 이해한다.”
일상에서 주변을 살리는 ‘센스’라는 것은 마음먹는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며 찾으려 한다고 아무에게나 쉽게 발견되는 ‘찬스’ 같은 게 결코 아니다. 사람을 바라보려 하고 듣고 싶어 하는 마음이 순수하게 닿을 때 가능해지는 투명한 진실과 같은 거라서 겸손한 마음의 온도가 닿는 예의이며 인간을 이해하려는 마음을 간직할 때 생기는 인격과 같아서 더 귀한 움직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센스가 없으면 그저 경청하고 오래 생각하고
쉬운 말과 입을 다물 용기를 반드시 내야 한다.”
2021.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