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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ul 19. 2022

이순신이라는 신화

<한산: 용의 출현> 김한민 2021

 7년 만에 공개된 <명량>의 후속작 <한산: 용의 출현>은 전작보다 앞선 시간대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제목이 알려주듯, 한산도 대첩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한다. 영화의 구조는 전작과 동일하다. 세계 해전 역사에 남을 거대한 해전을 클라이맥스에 두고, 거기에 도달하기까지 이순신(박해일)과 그에 대적하는 왜군, 그리고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리는 것이다. 이를테면, 각 인물들의 사연을 보여주는 것에 영화 초중반부 전체를 할애한 뒤 모든 스펙터클을 후반부에 쏟아붓는 <해운대>와 같은 전략이랄까? <명량>의 성공은 그러한 전략의 반복이었다. 백의종군한 이순신의 이야기를 영화 초중반부 내내 보여준 뒤, 호쾌한 해전을 보여주는 것. <한산>의 전략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전작의 적이었던 구루지마의 이야기가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전작에 비해, 이번 영화에선 왜군의 수장인 와키자카(변요한)의 비중이 상당히 크다.

 아니, <한산>의 이야기는 이순신이 아니라 와키자카를 중심으로 흘러간다고 봐도 무방하다. 마치 <어벤져스: 엔드 게임>의 서사가 어벤져스가 아닌 타노스를 중심으로 짜인 것처럼 말이다. 다만 <한산>에서 와키자카의 존재 목적은 처참하게 패배하는 것이다. 한산도 대첩에서 이순신이 대승을 거두었음은 모두가 알고 있다. <명량>에서와 다르게 전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순신이 겪은 고초도 없다. 영화 속에서 수차례 반복되는 학익진의 묘사, “바다 위의 성”처럼 이순신은 스크린 속에 굳건히 서 있을 뿐이다. 학익진을 고안해내는 것에 고뇌하는 모습이라던가, 자신의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 원균(손현주) 등을 설득하는 과정 또한 없다. 향도(안성기) 등의 다른 장수들은 이순신을 그저 믿고 따를 뿐이며, 왜군 장수인 준사(김성규)는 고문을 당하다가도 이순신의 카리스마에 무릎 꿇으며 전향한다. 일본군에 붙잡힌 기생 보름(김향기)과 윤영(옥택연) 등이 벌이는 일종의 첩보전이 등장하긴 하지만, 군인이 아닌 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전쟁에 참여했음을 살짝 보여주는 정도의 역할에 그친다. 이러한 상황에서 와키자카의 역할은 이순신이 선보일 전략, 신형 거북선과 학익진 등에 의해 박살 나는 것이다. 때문에 이야기의 비중은 와키자카에게 몰려 있다. 실제 스크린타임은 그와 이순신이 비슷하다 하더라도, 와키자카가 한산도 대첩에 도달하는 과정은 이순신에 비해 복잡하다. 

 이러한 선택은 아이러니하게도 실제 역사 때문일 것이다. 한산도 대첩과 그 이전까지 이순신의 이야기는, [난중일기]를 비롯한 여러 기록과 창작물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익숙한 영웅서사의 기승전결을 만들 수 없는 구조다. <한산>이 와키자카를 이순신보다 입체적인 인물로 그릴 수밖에 없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순신에 집중했다면 영화는 주인공이 으레 겪어야 할 위기를 만들어낼 수 없다. 대신 승리를 향한 집착에 휩싸인 와키자카를 주인공처럼 다룬다면,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생긴다. 때문에 <한산>은 이순신이 대승을 거두는 이야기에서, 와키자카라는 인물이 이순신이라는 거대한 벽에 도전하는 이야기로의 전환을 꾀한다. 영화 속에서 와키자카는 이순신과 맞서기 위해 히데요시의 책사 칸베에(윤제문)에게 허락을 구하고, 진주성을 공략하려던 육군에게 도움을 청하고, 다른 장수인 가토(김성균)의 배를 가로챈다. 그러한 과정을 거쳤음에도 와키자카가 이순신에게 패배하는 그림을 만들어내고자 했던 것이 <한산>의 목표다.

 <한산>은 그 목표를 달성한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영화의 모든 역량은 해전을 묘사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와키자카라면, 비주얼적 주인공은 해전 자체다. 나대용(박지환)이 새로 개발한 신형 거북선은 영화 마지막에서야 모습을 드러내는 괴수영화 속 괴수 같은 위용을 뽐내고, 학익진을 펼쳐 왜군을 섬멸하는 이순신의 전략이 펼쳐지는 모습은 여름 대작다운 시원함을 선사한다. 임진왜란을 다룬 RTS 게임 [임진록2+ 조선의 반격]의 고퀄리티 시네마틱 영상이 있다면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다만 <명량>과 마찬가지로, 그뿐이다. 예정된 대승을 거두는 이순신의 수군을 보는 것이나, 영화 내내 관객들을 이끌어온 와키자카의 패배를 지켜보는 것은 썩 재밌는 일은 아니다. <한산>이 보여주는 것은 공허할 정도로 익숙한, 이순신이라는 신화를 향한 숭배뿐이다. 그것도 이순신이라는 거대한 동상, “바다 위의 성”이라 할 수 있는 형상을 세워 둔 채 그것을 넘을 수 없는 인물을 주인공 삼아 패배하는 이야기를 그려낸, 이를테면 신에 도전하다 패배한 인간의 이야기처럼 영화를 만들어냈다. 때문에 <한산>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적을 때려 부수는 말초적인 재미 외에는 그저 공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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