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y 10. 2023

2023-05-10

1. 강수연 배우 1주기 추모 상영회를 통해 장선우의 <경마장 가는 길>을 관람했다. 당일 GV에 문성근 배우, 김홍준 영상자료원 원장과 함께 장선우 감독의 참석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코로나 이슈로 인해 감독은 참여하지 못했다. <경마장 가는 길>은 기이하고 과격하다. 원작 소설에서 그대로 따온 R의 문어체 대사들은 (누군가는 홍상수의 대사들을 떠올리겠으나) R의 '길 잃음' 자체를 스크린 위에 현현한다. 유학을 마치고 5년 만에 귀국한 R은 파리에서 동거하던 J와의 섹스를 시도하지만 번번히 실패한다. J는 R과 식사, 산책, 쇼핑 등을 하지만 "여기는 한국"이라는 이유로 섹스를 거부한다. 한국에 도착한 R은 말 그대로 길을 잃는다. J는 섹스를 거부하고, 아내는 이혼을 거부하여, 어린 두 자녀는 자신을 알아보지도 못한다. 5년의 시간 동안 서울은 너무나도 변화했다. 무엇보다, J의 말처럼 산책은 노동이 되었고, 붉은 십자가로 가득한 서울의 밤은 공동묘지를 연상시키며, 멸공을 외치는 자동차가 삐라를 뿌려댄다. 끝없이 무기력함을 호소하는 R은 J와의 섹스가 유일한 해결책이라 말하며, J를 설득하려 한다. 물론 이 설득의 과정이 지금의 관점에선 그루밍 성폭력과 다름없는 것이라는 지점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문학박사를 따고 돌아온 R에게 당대의 한국은 너무나도 지겨운, 지루한 공간이다. J와 동침하지만 발기되지 않아 섹스에 실패하는 몇 번의 밤은, 영화에는 대사로만 묘사될 뿐인 1세계에 대한 R의 판타지, 한국 땅에서는 충족될 수 없는 판타지에 결국 도달할 수 없다는 증거나 다름없다. R이 공항 출국장 문을 열고 들어오는 영화의 첫 쇼트를 떠올려보자. 5년만에 귀국한 그에게 한국은 마치 새로운 기회의 땅처럼 느껴진다. 귀국하는 이들을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J의 얼굴은 R로 하여금 두 사람의 재회가 한국을 외국으로 뒤바꾸는 잠재적 사건이길 소망케 한다. 당연하게도 이 소망은 J가 섹스를 거부하고 홀로 여관방을 나가는 첫날 밤에 무너진다. R은 완전히 길을 잃는다. J에 관한 그의 집착은 닿을 수 없는 판타지를 향한 궤변일 뿐이다. <경마장 가는 길>이 보여주는 무수한 잉여적 순간들, 인서트처럼 등장하는 식사장면, 싸움 직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양말을 사러 간다던가 식사를 하는 두 사람의 모습 등은 R의 판타지가 최종적으로 거절되는 것을 지연하는 장치다. 동시에 한국이라는 배경이 판타지의 단순한 반대항이 아니라 전진과 답보 사이에서 끝없이 길을 잃는 공간임을 보여준다. 91년에 개봉한 이 영화 속 삼풍백화점의 모습을 지금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것, 멸공을 외치며 삐라를 뿌리는 선전 자동차와 지금의 어떤 순간들을 연상하는 것 등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연상작용, 한국이라는 배경을 어떤 명쾌한 대상이 아니라 무언가 벌어질 수도 있을 것만 같은 진공으로 남겨두는 이 영화의 전략은 최근의 한국영화들에서 찾아볼 수 없다. 지금의 한국영화들은 한국이라는 공간을 무언가로, 무엇도 아닌 곳으로, 무언가 잠재된 곳으로 표현하길 주저한다. 제목에 공간과 장소를 내세운 영화들은 그곳들을 사유하지 않을 뿐더러 그 공간을 포커스아웃한 시킨 채 인물 사이의 시덥잖은 대화만으로 채워낼 뿐이다. 소수의 다큐멘터리를 제외하면, 한국영화에서 정작 '한국'이 부재한 상황이다. <경마장 가는 길>은 기이하고 과격한 방식으로 한국을 포착한다. 아니, '한국'이라는 이름으로 제시할 이미지의 부재 혹은 그 이미지의 폭력적인 난잡함을 포착한다. 일순간에 망연자실한 듯한 R을 보여주며 끝나는 이 영화의 엔딩은 그것을 응축해낸다.


2. <경마장 가는 길>을 본 김에 집에서 장선우의 <꽃잎>과 각본을 쓴 <남부군>을 봤다. 두 영화 모두 처음 보는 것이었는데, 각각 5.18과 빨치산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을 다룬다는 점에서 비슷한 시도로 다가왔다. <꽃잎>은 최윤의 소설 <저기 소리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를, <남부군>은 실제 '남부군'이었던 이태의 수기를 원작으로 삼는다. 각각 픽션과 논픽션을 원작으로 삼기에 극적 구성은 상당히 다르다. <꽃잎>의 경우 5.18 민주화운동의 트라우마로 미쳐버린 소녀의 이야기를 다루며, 종종 환상처럼 등장하는 흑백 플래시백으로 당시 사건이 재현된다. <남부군>은 이태가 남부군에 들어간 뒤 체포되기까지의 시간을 선형적으로 다뤄낸다. 하지만 두 작품을 나란히 두고 볼 때 중요한 것은 플롯의 차이가 아니다. 장선우가 각본을 쓴 작품 중 현대사의 실제 사건을 바탕삼은 영화는 이 두 편 뿐이다. 평안도 피난민 가정에서 자랐으며 5.18 민주화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구속되기도 했었던 장선우가 두 영화에 참여했다는 것은 우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허나 <꽃잎>은 장선우 특유의 불분명한 시간선, 흐트러진 이야기 등을 통해 5.18을 둘러싼 직간접적인 트라우마 자체를 묘사해냈다면, <남부군>은 한없이 심심한 방식으로 연출되었다. 묘사의 세밀함은 있을지언정 그것을 넘어서는 영화적 형식은 없다. 정지영의 다음 영화인 <하얀 전쟁>이 트라우마들을 중첩시키는 방식으로 베트남전 참전군인의 PTSD를 다뤄낸 것과 다르게, <남부군>은 이태의 수기를 직접 읽는 것만 못한 영화가 되었다. 이를 연출자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까? 두 영화를 연달아보며 장선우가 연출한 <남부군> 같은 것을 상상해보면, 이스트우드의 전쟁영화와 같은 것을 한국에서도 진작에 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3. 홍상수의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드디어 봤다. 홍상수의 옛날 영화를 볼 때마다 지금과는 너무 다른 모습에 놀라기도, 여전한 모습에 신기해하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유독 신기하게 다가왔다. 별 이유는 아니다. 한양대학교 인근에서 촬영된 영화 초반부 효섭과 보경의 데이트 장면은 나에게 한없이 익숙한, 지금은 왕십리 먹자골목으로 불리는 그 거리다. 서울의 표면을 햝듯이 담아내는 이 영화에서 그 거리를 단박에 알아본 것은 후경에 잡힌 한양대병원 건물 때문이다. 96년도에 개봉한 이 영화는 95년 9월에 촬영되었다. 나는 95년 9월 생이고 한양대병원에서 태어났다. 왼쪽 사진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장면을 찍은 사진이고, 오른쪽 사진은 네이버 거리뷰로 지금의 거리를 캡쳐한 사진이다. 내가 태어난 시점의 동네 거리를 홍상수 영화에서 보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했다. 일주일에 서너번은 지나치는 길을 28년 전의 영화에서 목격하는 것만큼 기묘한 일은 없다. 이전에도 홍상수 영화를 보다 비슷한 일을 경험했었다. 2018년 소집해제 후 유럽여행을 다녀온 뒤 영상자료원에서 '영화와 공간: 파리' 기획전으로 상영되었던 <밤과 낮>을 보았다. 파리에 머물 당시 한인민박에 묵었었는데, <밤과 낮>에서 성남이 묵은 한인민박과 같은 곳이었다. 당시에도 관련해서 글을 썼었다. https://brunch.co.kr/@dsp9596/426 하여간 이상한 일이다. 생활하고 머무르는 공간의 과거를 영화 속에서 목격하는 것은 언제나 영화 자체의 성질에 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해준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러스티 브라운>과 <지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