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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y 19. 2017

『나쁜 페미니스트』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저수지의 개들>을 좋아한다. 마돈나의 노래 ‘Like a Virgin’을 두고 10분 정도 이어지는 오프닝의 대화 장면은 굉장히 잘 짜인 장면이고, 멋진 대화 장면으로 가득한 타란티노 영화 세계의 시발점과도 같다. 동시에 그 장면은 미소지니로 가득하다. 타란티노는 타란티노 본인을 포함한 여러 미스터들에게 ‘Like a Virgin’에 관련한 질펀한 농담으로 가득한 대사를 주고, 관객에게 그것을 보며 낄낄거리며 웃기를 종용한다. <재키 브라운>이나 <데스 프루프> 같은 여성중심 영화를 만들기도 했던 타란티노이지만, <저수지의 개들>의 오프닝에서 드러나는 미소니지는 심각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장면을 좋아했고, 지금도 그 장면이 영화 속 인물관계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좋은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 문화비평 에세이인 『나쁜 페미니스트』에서 저자 록산 게이도 비슷한 이야기로 책을 시작한다. ‘bitch’와 같은 여성 비하적 단어로 가득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출 때도 있고, 어떤 영화나 드라마의 미소지니적인 면을 인지하면서 그 작품을 좋아하기도 한다. ‘핑크색을 좋아하지 않는다.‘’남성과의 섹스를 거부한다.’ ‘제모를 하지 않는다.’ ‘진하고 센 화장을 즐겨 한다.’ 같은 정형화된 페미니스트의 모습과 록산 게이의 모습은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다. 그렇다면 그는 페미니스트가 아닌가? 아니다. ‘페미니즘: 복수명사’라는 서문의 제목처럼, 그는 페미니즘은 천편일률적인 무언가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페미니즘엔 여러 갈래가 있고, 페미니즘을 따르는 사람의 젠더와 인종 역시 다양하며, 그렇기에 각자가 지지하는 페미니즘을 존중하고 공존하여야 한다. 

 

 록산 게이는 자신의 정형화된 페미니스트, 전문가적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사람이 아님을 밝힌다. 그는 자신이 나쁜 페미니스트일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이 부족한 페미니스트임을 고백하면서도 페미니즘 이슈에 자신의 발언권을 더하고 영화, 음악, 드라마 등 문화 속 성차별적인 면을 지적한다. 자신이 부족한 페미니스트일지언정 페미니즘에 대해 말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책의 추천사를 이렇게 적었다. “가부장제 사회가 강요하는 착한 여자 콤플렉스에 대한 저항이자, ‘우리’가 서로에게 요구하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페미니즘에 대한 거부이기도 하고, 동시에 규범화된 페미니즘은 불편하지만 자기만의 신념은 숨기지 않겠다는 ‘나의 페미니즘’이다”

 

 아이티계 흑인이자 미국인이고 여성이며 페미니스트인 록산 게이는 『나쁜 페미니스트』에서 자신의 관점으로 ‘록산 게이의 페미니즘’을 담아낸다. 로빈 시크의 노래 ‘Blurred Lines’와 <노예 12년>, <헬프>와 같은 영화,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등의 드라마 속 인종과 젠더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강간문화와 여성의 생식권에 대한 이야기가 책에 담겨있다. 그의 개인사적이면서도 광범위하고 보편적인 에세이는 “나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말할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답을 준다. 물론 그의 모든 말이 옳다고 할 수 없고, 책을 읽는 독자의 페미니즘은 다른 모습을 띠고 있을 수 있다. 중요한 점은 『나쁜 페미니스트』에 담긴 젠더와 인종에 대한 에세이를 통해 다양한 페미니즘에 대한 존중과 지지, 논의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 것. 이것이 록산 게이가 말하는 페미니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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