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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Aug 14. 2017

인터뷰의 가치에 비해 헐거운 이음매

탈북 여성을 다룬 임흥순 감독의 다큐멘터리 <려행>

 영상설치미술 작가이자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인임흥순에게 여성은 중요한 키워드이다. <비념>에서는 4.3 사건으로 남편을 잃은 할머니를, <위로공단>에서는 구로공단 여공을 비롯해 콜센터, 항공기 승무원 등 여성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뤘다. 임흥순 감독의 다큐멘터리는 영화가 다루는 인물의 인터뷰를 나열하고, 그 사이를 어떤 퍼포먼스나 인물이 있던 공간 등의 이미지 등을 통해 채우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탈북 여성을 다루는 신작 <려행>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형식을 취한다. 탈북한 가수 김복주를 비롯한 여러 여성들의 인터뷰가 등장하고, 그 사이를 산을 오르고 산속을 헤집고 다니는 탈북 여성, 그들이 남한에서 자리 잡은 공간 등으로 채운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단순히 탈북과정과 그 이후 자리 잡는 것을 재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위로/후회/기쁨/슬픔/절박함/행복 등의 감정을 강화하는 장치로 이용된다. 영화가 보여주는 공간은 탈북자에게 허락된 공간이 어느 곳인지 기록하며, 그곳에 도달하고 자리 잡는 여성들을 보여준다.

그러나 임흥순 감독의 작업에서 일관되게 등장하는 이러한 형식이 계속해서 효과적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산속을 헤집고 다니는 탈북 여성의 이미지는 너무나도 익숙하고 진부하며, 영화 속에서도 수 차례 반복되며 피로감을 준다. 영화가 공간을 환기하는 방식 또한 그저 보여주기만 할 뿐 흥미롭지 못하다. 가장 얕은수만 쓰는 느낌이랄까? 구로공단을 비롯해 콜센터, 한진중공업 등 다양한 장소를 활용할 수 있었고, 영화 속 인물들에겐 일상의 공간이지만 관객에게는 비일상적인 공간인 특성을 십분 활용했던 <위로공단>을 생각해보면, <려행>의 이미지들은 진부하고 흥미롭지 못하다. 영화의 어느 지점에서는 감독이 러닝타임 사이를 채우는걸 버거워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반면 탈북 여성들의 이야기를 당사자들이 직접 이야기하는 인터뷰들은 굉장히 흥미롭다. 탈북자의 이야기를 선정적으로 그려 내는 TV쇼와는 확연히 다른 양상의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항공기 승무원 최종면접에서 탈북자라는 이유로 면접조차 보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는 이야기 등의 익히 듣던 이야기 외에도, 그간 탈북자를 다루던 TV 프로그램이나 영화/드라마 등에서 듣지 못한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가령 북한 정부에서 “남한은 북한보다 가난하고 돈도 없어 굶으며, 매번 폭동이 일어난다”라고 선전하며 틀어준 프로파간다 영상물(5.18 민주화운동 영상을 편집한 것)을 보면서, “남한 사람들 손목의 시계와 옷이 세련되었고 살찐 사람이 등장하는 것에 더 눈길이 갔다”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 이후, 개성공단의 공장을 운영하던 업주들과 탈북 여성이 만나 사업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남한과 북한이 각각의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만들어낸 프로파간다는 역설적으로 작용한다. 북한의 프로파간다가 프로파간다 자체에 균열을 내는 방식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남한의 대북제제는 탈북자의 경제활동으로 이어진다. 

 아쉽게도 <려행>은 이러한 인터뷰를 강조하는 이미지를 보여주지 못한다. 흥미로우면서도 더 많은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은 인터뷰가 이어지지만, <려행>은 더 많은 이야기를 끌어오지도 더 깊게 이야기를 끌어가지도 못한다. 때문에 탈북 여성들의 이야기를 인터뷰를 통해 기록하고 기존에 듣지 못하던 이야기를 끌어낸 것에는 성공했지만, 전작들과 같은 방향성을 가지고 한 편의 장편 다큐멘터리로 이끌어가는 것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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