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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Aug 22. 2017

존재할 수 있는 곳에 존재하려는 한의 발현

한국고전영화 <무녀도>

 ‘한(恨)’이라는 것은 한반도의 사람들을 강하게 옭아매는 정서로 작동한다. <서편제>처럼 예술성 진한 작품부터 <최후의 증인>과 같이 현대사를 녹여낸 작품, 혼령과 무당이 등장하는 공포영화까지 한이라는 키워드는 영화의 기저에 깔린 정서로 작동한다. 영화의 주인공은 한을 예술로 승화시키기도 하고, 스스로를 움직이는 동력으로 사용하기도 하며, 그 자체가 공포의 동기가 되기도 한다. 박찬경의 <만신>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러한 한의 정서를 표출하고 대리해주는 역할을 담당한 것이 무당이다.

 주로 여성이 담당하게 되는 무당의 존재는 전근대의 잔존물이다. 남성은 지방에서 도시로, 해외로, 혹은 무언가를 수양하기 위해 집을 떠나지만, 여성은 가정에 속박되어 집이라는 공간을 지킨다. 여성이 신내림을 받고 무당이 되는 것은 가부장제의 망령이 지박령처럼 여성을 지역에 구속하는 가장 극적인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최하원의 <무녀도>는 이러한 과정을 더욱 극적인 서사로 만들어낸다. 부계중심사회와 그릇된 유교적 신분제는 모화와 낭이 모녀(수양딸이지만 사실상 혈육관계처럼 그려진다)에게 한을 심어준다. 모화의 친아들인 욱은 모화나 낭이 품게 되는 한의 정서를 피해 산속의 절로 피신했다 돌아온다. 남성은 화를 피해 지역을 벗어날 수 있지만, 여성은 지역에 속박된 존재이기에 이를 벗어나지 못한다. 무당이라는 구속은 두 주인공의 속박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집으로 다시 돌아온 욱은 공부를 하러 절로 떠났지만, 선교사를 만나 기독교 신자가 된 인물이다. 욱은 영화의 배경인 1960년대 말~1970년대 초의 봉건적 신분제를 떠나 근대의 상징과도 같은 기독교를 배우고 내화하게 된다. 이는 욱이 스스로 낭이의 구원자가 되어야 한다는 자각으로 전이된다. 이러한 자각은 사랑이라는 표현으로 발현되지만, 굉장히 강압적인 모양새로써 그려진다. 세상을 탐험하는 남성-집에 속박되어 가정을 지키는 여성의 도식화된 구도는 기독교인 욱-무당인 낭이의 관계를 통해 구현된다. 여성은 남성의 탐험을 위한 재생산을 담당하며 욱을 비롯한 사람들의 한을 받아주는 직업인 무당은 이를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설정이다. 

 모화가 굿을 하며 물속으로 들어가고, 다시 올라오지 않으면서 영화는 마무리된다. 무속은 전근대의 잔존물이지만, 동시에 가부장제와 신분제, 새로이 밀려오는 근대성 사이에서 여성이 자리 잡을 수 있는 대상이기도 하다. 한의 정서라는 모호한 것을 정의 내리기는 쉽지 않지만, 무당은 그 정서가 실존하는 것임을 드러냄으로써 존재한다. 무속과 근대가 충돌하는 서사는 모화는 물속에 들어가 달을 품는 것으로 끝난다. 정서를 품으며 자신의 존재를 확고히 하는 모화의 최후는 자신이 존재할 수 있는 곳에 존재하려는 한의 발현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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