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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Sep 04. 2017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작가의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은 한 심리상담사가 이상증세를 겪는 김지영의 이야기를 기록한 내용을 세세한 단어들로 그려낸다. 소설은 추석이 포함된 2015년 가을에서 시작한다. 82년생인 김지영은 누군가에게 빙의된 듯 행동한다. 남편의 장모처럼, 얼마 전에 죽은 대학 동아리 선배처럼 말을 한다. 가부장제에 토대를 둔 한국 사회 속에서 희생되어 온 여성들이 김지영의 몸을 빌어 다시 돌아온 것처럼 소설의 첫 챕터가 묘사된다. 글은 이어서 1982년, 김지영이 태어났을 때의 시점으로 옮겨간다. 소설은 그의 유년시절과 학창 시절이 담긴 1982년~1994년, 대학시절이 담긴 1995년~2000년, 첫 직장과 그곳에서의 생활이 담긴 2001년~2011년, 결혼생활을 담아낸 2012년~2015년의 각 챕터로 나뉘어 있다. 김지영의 삶을 세세하게 쫓는 조남주 작가의 문장들로 독자는 김지영의 삶을 간접적으로 살아가게 된다. 아들을 위해 셋째까지 낳아야 했던 김지영의 어머니, 두 손녀와 막내인 손자를 대놓고 차별 대우하는 할머니, 자꾸만 괴롭히는 짝꿍 남학생의 행동이 다 좋아해서 하는 것이라고 납득시키려는 선생님, 김지영을 “누가 씹다 버린 껌”이라고 표현하는 겉으로는 번지르르한 대학 동아리 남자 선배, 먹기 싫은 술을 강권하며 성희롱적 농담을 일삼는 거래처 부장, 그 밖에 용돈/학업/동아리/취업/임금/육아 등 34년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피부로 느껴지는 ‘여자이기에’ 겪는 온갖 차별들이 소설 속에서 그려진다. 이러한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으레 남들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거나, 외모가 특별하다거나 등의 성격을 부여받고 사회적인/개인사적인 억압들을 타파하는 어떤 영웅처럼 그려지곤 한다. 지난 3월에 개봉한 <히든 피겨스>라는 작품 등에서 이러한 경향이 드러난다. 그러나 『82년생 김지영』은 소설 전체에 걸쳐 김지영의 평범성을 강조한다. 독자가 책을 펼치면 보게 되는 첫 문단은 기계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김지영의 신상정보를 적어 내린다.


“김지영 씨는 우리 나이로 서른네 살이다. 3년 전에 결혼해 지난해 딸을 낳았다.
 ~ 김지영 씨는 작은 홍보대행사에 다니다 출산과 동시에 퇴사했다.
 ~ 김지영 씨가 딸의 육아를 전담한다. 정지원 양은 돌이 막 지난여름부터
단지 내 1층 가정형 어린이집에 오전 시간 동안 다닌다.


 김지영과 남편의 심리상담사가 소설의 서술자로 설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조남주 작가는 김지영이 34년의 세월, 아니 그의 어머니가 김지영을 낳기 전부터 겪었던 성차별을 덤덤하게 기록한다. 마치 자신이,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거의 모든 여성이 겪었을 상황들을 세세하게 묘사해나간다. 그렇기에 『82년생 김지영』의 김지영이라는 인물은 평범성과 객관성을 획득한다. 김지영이라는 이름이 82년생 여성의 이름 중 가장 많은 이름이라는 것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기능한다. 동시에 책을 읽는 독자들은 김지영이라는 인물에 몰입하고, 자신을 대입하고, 그의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라고 여긴다. 책의 문장들은 김지영에게 감정이입할 여지를 많이 남기지 않지만 독자는 김지영에게서 자신이 느껴왔던 감정을 읽어낸다. 이러한 부분이 『82년생 김지영』의 가장 놀라운 성취이며, 생애 거의 모든 순간에 걸쳐 한국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대다수 여성이 성차별을 경험하고 있다는 명제의 증거이다. 김지영의 삶을 기록한 심리상담사가 40대의 남성이며, 자신의 아내와 김지영을 통해 대한민국의 여성들이 차별당하고 착취당하고 억압당하고 있음을 인지하지만, 출산으로 인해 퇴직하는 부하직원을 보며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도 육아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여직원은 여러 가지로 곤란한 법이다.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봐야겠다.”라는 결론을 내린다. 175페이지에 걸쳐 김지영의 삶을 세세하게 적어 내린 심리상담사는, 대한민국 여성들의 삶을 이해한다고 하지만 결국 수많은 김지영을 희생시키고 착취하는 위치에 서 있다. 『82년생 김지영』의 마지막은 법제도가 개입하여 유리천장을 해체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소설 밖 현실 속, 심리상담사와 동년배의 남성들이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할까? 조남주 작가가 마지막 문단을 통해 내린 결론에 뒤통수가 아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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