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가 올해로 19회를 맞았다. 얼마 전 공개된 라인업은 많은 시네필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아마 근 2~3년간 열린 국내 국제영화제 중 가장 풍성한 라인업을 자랑하지 않을까? 진보와 실험을 내세운 전주국제영화제 답게 칸 국제영화제, 베를린 국제영화제, 로카르노 국제영화제 등의 수상작부터 다양한 종류의 다큐멘터리와 실험영화가 상영된다. 베를린 영화제 여자 연기상 수상작인 안드레아 팔라오로의 <한나>, 로카르노 영화제 초청작인 존 캐롤 린치의 <럭키>(이 작품은 작년 세상을 떠난 해리 딘 스탠튼의 유작이기도 하다), 발레리 마사디안의 <밀라> 등 영화제 화제작이 영화제를 찾을 시네필들의 시선을 끌어 모으는 것은 물론이고, 작년 상영이 불발되었던 에즈라 에델만의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 부문 수상작 <O.J.: 메이드 인 아메리카>가 상영이 확정되기도 했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예조 산책하는 침략자 극장판>이나 라브 디아즈의 <악마의 계절>, 다시 다큐멘터리로 돌아온 세르게이 로즈니차의 <승리의 날> 등 거장들의 신작 역시 기대를 모은다. 한정된 일정 속에서 어떤 영화를 봐야 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는 지금, 총 246편의 상영작 중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되는 작품 5편을 골라보았다.
Choice 1.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 (2017)
감독: 하이파 알 만수르
출연: 엘르 패닝
2012년 <와즈다>를 통해 여성 성장영화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첫 여성 영화감독 하이파 알 만수르가 이번엔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 무려 엘르 패닝이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집필한 여성 작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를 연기한다. 작년 한 해만 해도 <20세기 여성>(2017), <매혹당한 사람들>(2017), <리브 바이 나잇>(2017) 등 수많은 작품에서 인상 깊은 모습을 보여주었던 엘르 패닝의 캐스팅만으로도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에 대한 기대치가 상승한다. 영화는 영국 상류사회에 큰 스캔들이었던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시인 퍼시 셸리와 연애가 출산의 비극으로 전환점을 맞고, 이후 메리가 『프랑켄슈타인』을 집필하게 되는 과정을 담아낸다.
Choice 2. <스탈린의 죽음> (2017)
감독: 아르만도 이안누치
출연: 올가 쿠릴렌코, 스티븐 부세미, 패디 콘시딘, 안드레이 라이즈보로, 사이먼 러셀 빌
영국 독립영화상에서 남우조연상 등 4관왕에 오른 작품. 작년 다양한 영화제에서 선보여 평단의 호평과 관객들의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낸 작품이다. 1953년 소련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이 사망한 시점을 배경으로 삼은 <스탈린의 죽음>은 그의 최후의 날들을 추적하면서 그로 인해 몰아닥친 혼란을 그려내고 있다. 온갖 블랙코미디와 슬랩스틱이 난무하는 작품으로, <007: 퀀텀 오브 솔러스>의 올가 쿠릴렌코, 다양한 영화에서 매력적인 조연으로 출연했던 스티브 부세미, 작년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에서 호연을 보여준 안드레이 라이즈보로, 이번 영화를 통해 영국 독립영화상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사이먼 러셀 빌, <스타트렉: 디스커버리>의 제이슨 아이삭스 등 화려한 출연진을 자랑하기도 한다.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날카로운 웃음을 찾고 싶다면 단연 <스탈린의 죽음>을 먼저 예매해야 하지 않을까?
Choice 3. <24 프레임> (2017)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이란의 거장,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남긴 마지막 작품이다. <체리 향기>, <사랑을 카피하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등의 걸작들을 남긴 그는, 2016년 사망 이후에도 작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집으로 데려다 주오>에 이어 다시 한번 유작으로 그의 영화가 영화제를 찾게 되었다. 공개된 예고편과 스틸컷만 봐도 그가 영화 인생 전체에 걸쳐 잡아내려 했던 이미지가 어떤 것이었는지 강렬하게 느껴진다. <24 프레임>은 영화 속 이미지에 대한 그의 열정이 새와 소, 늑대, 사슴, 바람, 파도 등 동물과 자연을 피사체로 삼은 연작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Choice 4. <디트로이트> (2017)
감독: 캐서린 비글로우
출연: 존 보예가, 윌 폴터, 한나 머레이, 제이슨 밋첼, 안소니 맥키
<폭풍 속으로>(1991), <제로 다크 서티>(2012) 등을 연출하고 <허트 로커>(2008)로 아카데미 최초로 작품상을 수상한 여성 감독이 된 캐서린 비글로우의 신작 <디트로이트>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다. 1967년 디트로이트에서의 흑인 폭동을 담아낸 이번 영화는 한 동안 미국 본토를 벗어나 현대의 전장 속 미국을 그려내던 캐서린 비글로우가 다시 미국 본토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담아낸다는 점에서 많은 기대를 모으로 있다. 특히 <스타워즈>를 비롯한 여러 블록버스터에 출연하며 주가를 올리고 있는 존 보예가, <메이즈 러너> 시리즈의 윌 폴터, <스킨스>와 <왕좌의 게임> 등 유명 드라마에 연달아 출연한 한나 머레이,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에서 이지 이를 연기해 호평을 받은 제이슨 밋첼, <어벤저스>의 팔콘 안소니 맥키까지 화려한 캐스팅은 <디트로이트>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카엘 하네케의 <해피 엔드>, 웨스 앤더슨의 <개들의 섬> 등의 영화들처럼 이미 수입이 완료되어 영화제 이후 정식 개봉 예정이기도 하다.
Choice. 5 <더 큐어드> (2017)
감독: 데이빗 프레인
출연: 엘렌 페이지, 샘 킬리
국내 스크린에서 엘렌 페이지를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운 것 같다. <인 투 더 포레스트>(2015), <탈룰라>(2016), <플랫라이너>(2017) 등의 최근작들이 모두 IPTV 등의 2차 매체로 직행하거나 넷플릭스를 통해서만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의 모습을 스크린에서 보는 것은 몇몇 영화제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스크린 속 엘렌 페이지를 만나볼 수 있다. 이번 영화가 장편 데뷔작인 데이빗 프레인의 <더 큐어드>는 엘렌 페이지 주연의 좀비 영화다. 이 영화는 좀비가 창궐한 세상에서 생존자들의 모습을 그려내는 기존의 영화들과는 조금 다른 노선을 취한다. 영국 드라마 <휴먼스>처럼 좀비 바이러스에서 치료된 사람들이 사회로 복귀하는 상황을 그려낸 이번 영화는 '치료되었다고 믿는 순간 다시 공포가 시작된다는 역설'을 보여준다고 한다. 오랜만에 엘렌 페이지의 모습을 스크린에서 확인하고 싶은 관객이라면 꼭 이번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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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ice + <코끼리는 그곳에 있다>(2018), <악마의 계절>(2018), <O.J.: 메이드 인 아메리카>(2016)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유독 기나긴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영화들이 많다. 중국의 감독 후 보의 <코끼리는 그곳에 있다>는 234분의 러닝타임을 자랑한다. 마을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네 인물의 하루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작가이기도 한 후 보 감독 본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그의 첫 영화이자 유작이기도 하다. 언제나 기나긴 러닝타임으로 시네필들을 시험에 몰아넣는 라브 디아즈 감독의 신작 <악마의 계절> 역시 이번 영화제를 찾는다. 역시 234분이라는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이번 영화는 베를린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어 첫 선을 보였었다. 70년대 후반 필리핀, 공산주의자를 토벌하기 위해 조직된 민병대가 마을을 공포로 몰아넣는다는 줄거리의 작품으로, 무려 뮤지컬(?) 장르이기도 하다. 에즈라 에델만의 <O.J.:메이드 인 아메리카>는 이번 영화제의 하이라이트와도 같다. 무려 467분, 8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이 영화는 2016년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번 영화제에서 심야로 상영한다고 하니, 낮에는 다른 영화를 즐기고 여유롭게 밤샘 영화를 관람하면 되시겠다.
Choice ++ [디즈니 레전더리], [되찾은 라울 루이즈의 시간], [알렉세이 게르만 주니어, '시대의 초상']
이번 영화제에서 시네필들을 가장 열광하게 만든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을까? 디즈니, 라울 루이즈, 알렉세이 게르만 주니어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스페셜 포커스의 세 가지 프로그램은 규모와 퀄리티를 모두 만족시키는 놀라운 구성을 자랑한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1937)부터 <인사이드 아웃>(2015)까지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을 무려 30편이나 상영하는 [디즈니 레전더리] 프로그램은 이 프로그램을 위해 전주를 찾는 마니아들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놀라운 라인업을 자랑한다. 최근 메가박스와 CGV에서 각각 진행된 디즈니 상영 전의 제대로 된 버전이랄까? 특히나 1940년 버전의 <판타지아>는 단연 놓치지 말아야 할 걸작이다. [되찾은 라울 루이즈의 시간]은 2011년 세상을 떠난 칠레의 영화감독 라울 루이즈의 대표작들을 만나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생애 동안 120여 편에 달아는 작품을 남긴 그의 작품 중 장편 데뷔작인 <세 마리의 슬픈 호랑이>(1968)과 2017년 발굴, 복원된 <길 잃은 드라마> 등 11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도 라울 루이즈의 작품을 제대로 접해보지 못해 이번 프로그램이 상당히 기대된다. [알렉세이 게르만 주니어, '시대의 초상']은 작년 알렉세이 게르만 특별전과 연계되는 프로그램이다. 그의 아들인 알렉세이 게르만 주니어의 대표작 6편과 아버지인 알렉세이 게르만의 작품을 아들이 마저 완성한 <신이 되기는 어렵다>(2013)이 상영된다. 그의 영화를 통해 현대 러시아를 읽어낼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