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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y 29. 2018

사람을 소비품으로 다룬 정부

<서산개척단> 이조훈 2018

 1960년대 초, 5.16 쿠데타의 성공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권은 전국 140 곳에 달하는 지역에서 간척 사업을 시작한다. 간척사업은 한국전쟁 직후이기에 제대로 된 중장비도, 기술도 없이 오로지 인력으로만 진행되었다. 박정희 정권은 이를 위해 길거리의 부랑아들을 교화시키고 자활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납치해 곳곳에 투입하여 맨손으로 땅을 개척하게 했다. <블랙 딜> 등 한국의 다양한 사회문제에 접근하는 작품으로 알려진 이조훈 감독의 신작 <서산개척단>은 박정희 정권이 충청남도 서산에서 벌인 간척 사업에 싸인 비밀을 파헤치는 작품이다. 영화는 납치되어 강제로 개척에 투입된 생존자들을 인터뷰하고, 문서, 문화영화, 방송, 등 다양한 자료들을 동원해 당시의 사건을 탐색한다.  

 ‘대한청소년개척단’이라는 겉으로는 번지르르한 이름으로 불린 사람들은 그곳에서 말 그대로 짐승보다 못 한 대우를 받았다. 납치되어 강제로 끌려온 것은 물론이고, 행선지도 모른 채 서산에 도착하자마자 구타와 폭언을 들으며 강제노역에 투입되어야 했다. 중장비 없이 맨 손으로 갯벌의 물을 빼고, 둑을 쌓고, 그곳을 논으로 바꾸는 작업을 했기에 수많은 사람이 현장에서 사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망자에 대한 공식집계조차 남아있지 않으며, 개척한 토지를 무상배급한다는 정부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박정희 정권의 퇴진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정부도 이에 대한 공식적인 보상을 하지 않았다. 50여 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 사건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 정부가 개척사업에서 빠진 이후에도 남아 기어코 갯벌을 농지로 만들어내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과 목소리가 영화 속에 빼곡히 담긴다. 이들의 모습과 잘 정리되어 제시되는 자료들은 <서산개척단>이 박정희 정권의 만행(한 생존자의 말을 빌리자면 “나라라고 부르기에도 창피한”)을 증명하는 증거가 된다. 

 그러나 몇몇 부분에서 의문점이 남는다. 물론 박정희 정권의 만행에 대한 의문점은 아니다. 영화가 생존자, 피해자들을 다루는 태도에서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됐어야 하나’ 싶은 부분들이 있다. 영화는 몇 차례에 걸쳐 서산개척단에게 가해진 정부의 만행을 재연한 연극을 이제는 어르신이 된 생존자들에게 보여준다. 몇몇은 직접 극장을 찾아 연극을 관람하고, 몇몇은 서산의 마을회관에 모여 녹화된 연극을 시청한다. 당연하게도 카메라는 이를 보면서 과거의 기억(이라 쓰고 트라우마라 부를 수 있는)을 떠올리는 피해자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인터뷰를 하며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말이 떨리고 가슴이 막히는 사람들의 눈 앞에 생생하게 재연된 폭력을 보여주고, 그 반응을 클로즈업으로 담는 연출 과정은 과연 윤리적인 것일까? 어쩌면 이러한 연출이 또 다른 폭력이 되진 않을까? 연극을 영화 안에 담고자 했다면, 교차편집 등의 방식으로 삽입하는 정도로도 충분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 걸리는 부분은 후반부의 국회도서관 장면이다. 도서관에서 당시에 관련된 서적을 살펴보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영화의 자막은 친절하게도 그가 <서산개척단>의 연출자인 이조훈 감독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사실 영화 속에 그의 모습이 등장할 필요는 없다. 더 나아가 목소리조차 등장할 필요가 없다. 인터뷰를 비롯한 영화 속 모든 육성은 자막으로 처리되고 있고, 감독이 굳이 카메라 앞에 나서 자막까지 달아가며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필요는 없다. 별 다른 이유 없이 자신의 모습을 영화에 담는 (게다가 그 장면은 연출된 장면일 수밖에 없다) 선택은 자연스럽게 <김광석>을 제목으로 내세워 놓고 포스터엔 자신이 등장한 이상호 감독의 행동을 연상시킨다. <그날, 바다>를 비롯해 최근 연이어 개봉한 나꼼수 제작의 다큐멘터리들 또한 연상된다. 진보계열로 분류되는 한국 중년 남성 다큐멘터리 감독/제작자들이 어째서 다큐멘터리 안에 자신의 존재감을 심어 넣으려고 하는 것인지, 그 이유가 궁금해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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