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 아녜스 바르다 2019
지난 3월 29일, 아녜스 바르다가 세상을 떠났다. 현재까지 살아있는 몇 안 되는 누벨바그 감독이자, 여성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내던 페미니스트인 아녜스 바르다는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자신의 마지막 영화인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를 발표했다. 제목부터 바르다의 마지막 영화임을 암시하는 것만 같은 이 영화는, 아녜스 바르다가 자신의 영화들과 영화 인생을 정리하고 설명하는 작품이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부터 <얼굴들, 장소들>까지 이어지는 바르다의 영화들, <감자 유토피아>나 ‘영화 오두막’ 등의 전시작업 등까지 바르다의 작업 전체를 훑는 이 영화는, 그 자체로 바르다 영화의 정수임과 동시에, 그동안 바르다의 영화를 사랑해오던 관객들에게 바르다가 보내는 편지이기도 하다.
특정 영화감독에 대한 다큐멘터리들 중, 영화의 주제가 된 인물의 스타일을 따라 연출된 다큐멘터리들은 여럿 있었다. 가장 최근의 사례로 데이빗 린치의 연출 스타일을 따라한 <데이빗 린치: 아트 라이프>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영화들은 대부분 다큐멘터리의 연출자가 작품의 대상이 되는 연출자는 아니다. 반면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에서는 아녜스 바르다가 아녜스 바르다의 이야기를 한다. 영화 오프닝에 등장하는 바르다의 영화와 전시, 인터뷰 등 수많은 자료들의 목록은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마무리 짓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만 같다. 사람으로 가득한 극장에 앉아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는 바르다의 뒷모습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자신이 그동안 해온 스타일로 관객들과 마지막 대화를 나누고자 한다.
사실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가 바르다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영화는 바르다가 스스로 자신의 활동을 정리하는 것에 집중한다. 때문에 바르다의 전작들을 가능한 많이 본 뒤 이 영화를 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 영화는 온전히 바르다의 팬들을 위해 바르다가 직접 나선 작품이다. 바르다 특유의 유머러스한 편집과 농담, 카메라에 담기는 대상에 대한 애정을 아낌없이 드러내는 태도, 노년의 나이임에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모습 등이 영화에 담긴다. 또한 꺄트린느 드뇌브, 제인 버킨, 장 뤽 고다르 등의 동료들과 남편이었던 자크 드미와의 이야기부터, 2018년 개봉한 <얼굴들, 장소들>를 공동 연출한 사진작가 JR을 마지막으로 하는 ‘바르다의 동료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즐겁고 아름답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원래 <얼굴들, 장소들>의 마지막 장면으로 염두에 두었다는 JR과 함께 의자에 앉아 모래바람 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으로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가 끝난다. 정말 바르다스러운 퇴장이자, 가장 영화적인 퇴장이 아닐까 싶다. 아녜스 바르다는 이제 세상에 없지만, 그의 작품과 그에게 영향을 받은 작품, 작가들은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바르다의 유산, 땅 위를 흐르는 모래바람으로 표현되는 바르다의 ‘누벨바그(뉴 웨이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