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젠트. 퍼펙트.> 주셩저 2019
<프레젠트. 퍼펙트.>는 <새로운 해>를 통해 중국 현대인들의 삶을 담아낸 다큐멘터리스트 주셩저의 신작이다. 전작에서 중국의 이주노동자들에 식사 장면을 통해 이들의 모습을 보여준 주셩저는, 이번엔 전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실시간 스트리밍 개인방송’을 통해 같은 주제를 다른 방식으로 드러낸다. 주셩저가 영화에 인용하는 개인방송들은 대부분 소수자들이 진행하는 방송이다. 사고로 인해 얼굴에 화상을 입은 남자, 노동현장을 엔터테인먼트로 뒤바꾸는 여공과 건설노동자,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가 방송을 통해 집 밖으로 나온 사람, 갈 곳 없이 길거리에서 막춤을 추는 남자, 장애인, 성소수자 등이 <프레젠트. 퍼펙트.>가 가져온 스트리밍 방송의 주체들이다.
영화는 2017년 스트리밍 방송의 부흥 이후 중국 정부가 ‘사이버보안법’을 만들어 검열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자막을 통해 시작한다. 그리고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건설현장에서 크레인을 조종하는 노동자가 크레인에 카메라를 달아 자신의 시선으로 자신의 노동현장을 스트리밍하는 장면이다. 그 이후 앞서 언급한 여러 사람들의 방송이 차례차례 등장한다. 스트리밍 방송은 현재의 새로운 엔터테인먼트이자 수입원이다. 또한 (불완전하더라도) 어떤 소통을 가능케 하고, 지루한 노동에 활력을 불어넣기도 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자 자신의 삶을 일종의 엔터테인먼트로 승화시킨다. 스트리밍 방송은 자신만의 희망, 좌절, 일상생활, 분노, 기쁨, 즐거움 등을 토해내는 장이다. 파괴와 재건이 반복되는 강대국 중국에서 실상 별 것 없어 보이는 소수자들의 일상이 개인들에 의해 폭로되는 장이기도 하다.
주셩저는 35mm 필름과 고정된 카메라, 고전적인 구도를 사용했던 전작 <새로운 해>와 다르게, <프레젠트. 퍼펙트.>에서는 실시간 스트리밍 방송을 택한다. 방송을 하는 주체들의 움직임에 따라 카메라는 거칠게 흔들리기도, 어딘가에 고정되기도 한다. 이러한 화면 구성은 주셩저의 다른 작품들과 큰 차이를 보이는 것 같다. 하지만 <프레젠트. 퍼펙트.>를 구성하는 장면들의 영화적 논리는 그의 다른 작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주셩저는 중국의 다큐멘터리스트인 왕빙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다(이번 영화의 엔드크레딧에도 왕빙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때문에 그의 영화적 논리는 왕빙 영화의 논리와 유사하다. 실시간 스트리밍 방송에는 편집이 없다. 방송을 켤 때부터 끌 때까지 ‘롱 테이크’, ‘원 테이크’로 촬영이 이루어진다. 이는 한 공간, 한 인물을 집요하고 길게 담아내던 왕빙의 영화들, 식사 장면을 가만히 관찰하기만 하던 주셩저의 전작과 유사하다. 카메라는 계속해서 움직이지만, 결국 방송의 시작과 끝, 카메라의 작동과 종료를 통해 구성되는 ‘롱 테이크’들이 <프레젠트. 퍼펙트.>를 구성한다.
왕빙이나 주셩저의 다른 작품과 다른 점이라면, 카메라를 든 주체가 연출자나 카메라 감독이 아닌 스스로 피사체가 되길 선택한 개인방송의 주체들이라는 점이다. 때문에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실시간 스트리밍 방송들을 보던, 혹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유튜브 등의 채널을 통해 실시간 스트리밍을 해본 경험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관객은 다른 어떠한 방식보다 깊게 영화 속 인물들에게 접속할 수 있다. 영화 속 인물들은 분명 영화를 보는 관객들과 여러 방면에서 다른 존재이지만, 스트리밍을 통해 열린 소통 가능성이 영화를 통해 더욱 확장되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적인 망상이지만, 엔드크레딧에 등장하는 영화 속 스트리밍 채널들을 찾아가 실시간 방송을 보는 관객들이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프레젠트. 퍼펙트.>는 실시간 스트리밍이라는 새로운 매체를 통해 중국 현대인의 삶을 탐구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매체의 가능성을 영화로 확장시키는 작업이기도 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