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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an 23. 2020

자신의 과거에 보내는 찬사

<페인 앤 글로리> 페드로 알모도바르 2019

 어떤 영화는 감독의 유서처럼 다가온다. 아녜스 바르다의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가 그랬고, 마틴 스코세이지의 <아이리시맨>이 그랬다. 물론 70대에서 80대를 오가는 노년의 감독들이었기에 더욱 그렇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어느덧 70세가 된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신작 <페인 앤 글로리>도 그러한 작품으로 다가왔다. 물론 바르다와 스코세이지의 영화와는 다르다. 전자가 자신의 삶을 되짚어보는 회고의 시간이었고 후자가 자신이 이루었고 애정을 품어온 것들에 스스로 사망선고를 내리는 애도의 시간이었다면, 알모도바르의 신작은 “비록 고통스럽지만 내 삶은 찬란하고 아름다웠노라”라고 추억하는 시간이다. 

 영화는 세계적으로 성공한 영화감독 살바도르(안토니오 반데라스)가 32년 만에 자신의 데뷔작을 다시 보게 되고, 어머니 하신타(페넬로페 크루즈), 데뷔작의 주연이었던 알베르토(에시어 엑센디아), 영화감독이 되기 전의 애인이었던 페데리코(레오나르도 스바라글리아), 어린 시절 자신이 글을 가르쳤던 에두아르도(세사르 빈센트) 등을 회상하거나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고 있다. 어머니의 사망과 척추수술, 그 밖에 우울증, 불면증 등이 겹쳐 작업활동을 이어가지 못하던 살바도르는 자신의 데뷔작을 다시 본 것을 계기로 감정의 변화를 겪는다. 그는 잠들 때마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오랜만에 재회한 알베르토와 페데리코는 잠시 미뤄둔 관계와 감정들을 상기시킨다. 

 살바도르는 그렇게 상기시킨 과거들을 어떤 작품으로 만들어낸다. 그것이 언제나 자의에 의한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을 기억을 풀어낸 글 ‘중독’은 알베르토에 의해 발견되고 모노드라마 연극으로 공연된다. 페데리코와의 재회와 오랜 시간이 지나 받게 된 에두아르도의 편지는 글로, 각본으로, 살바도르의 신작 영화로 제작되는 계기가 된다. 영화가 시작하면 등에 기다란 흉터가 나 있는 살바도르의 몸을 보게 된다. 신학교에서 합창단 솔로이스트였기에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한 그는 자신의 몸에 발생한 질병과 장애들을 통해 해부학을 익혔다고 말한다. 그의 과거들은 몸에 새겨진 고통이자 정신에 산재하는 공부였고, 그는 그 과거들을 쌓아 올려 영광을 만들어낸다. <페인 앤 글로리>는 자신의 찬란한 삶을 만들어준 과거들에 찬사를 보내고, 그것들의 아름다움을 발굴하기 위한 작업들을 보여주는 작업이며, 그 고통을 견뎌낸 자신과 과거들을 제공한 모든 이들에게 영광을 돌리는 작품이다. 강인한 육체를 전시하는 역할을 수차례 연기했던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고통으로 인해 육체를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는 살바도르를 연기하는 것은 그래서 흥미롭다. 헤로인에 중독되어가면서 척추와 식도를 비롯한 몸의 온갖 부위의 방치된 질병들을 마침내 치료받기로 한 순간은 과거와 손을 맞잡고 그것에 헌사를 바치는 일이 된다. 때문에 이 영화감독의 이야기, 알모도바르의 자전적 이야기인 이 영화는 후회 없이 과거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유서처럼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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