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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Feb 17. 2020

54. <씨네필>

원제: The Cinephiles
감독: 마리아 알바레즈
제작연도: 2017

 아르헨티나에서 영화를 즐기는 은퇴여성들의 모습을 기록한 마리아 알바레즈의 다큐멘터리 <씨네필>은 굉장히 감동적인 작품이었다. 이 영화 속 씨네필들은 영화제를 돌아다니고, 씨네마테크를 다녀 본 관객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영화제 카탈로그를 기록용과 보관용으로 나누어 챙기고, 시간표에 밑줄을 그어가며 어떤 영화를 관람할지 신중히 선택하는 영화 속 씨네필들의 모습은 매번 영화제를 갈 때마다 반복되는 내 모습과도 유사하다. 심지어 워커나 지팡이를 끌며 상영시간에 맞춰 이동하는 은퇴여성들의 모습에서 어떤 감동을 느끼지 못할 관객이 있을까?

 영화가 담아내는 이들이 영화과 학생이나 아직은 혈기왕성한 중년의 씨네필이 아니라는 점은 <씨네필>을 특별하게 해준다. 70을 넘긴 나이의 은퇴여성들은 그 세월만큼 쌓아온 경험과 지혜를 토대로 영화를 고르고 평가한다. 반대로 어떤 영화에 대해 오롯이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영화제나 시네마테크에서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방금 본 영화나 최근에 화제가 된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씨네필>에 등장하는 은퇴여성들의 대화는 조금 특별하다. 이들의 대화는 영화를 다르게 분류하기도 하고, 오래된 영화를 부활시키기도 한다. 알랭 레네의 <히로시마 내 사랑>(1959), 프랑수와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1959), 알랭 기로디의 <호수의 이방인>(2013) 등에 대해 나누는 대화는 젊은 씨네필들이 말하고 들어왔을 법한 이야기와는 다른 결을 각 영화에 부여한다.

 2018년 유럽여행에서 런던과 파리의 시네마테크와 독립 극장을 찾아 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다. 그곳의 풍경은 얼핏 부산 영화의 전당이나 서울의 시네마테크 KOFA와 닮아있다. 하지만 풍경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다르다. 물론 한국에도 노년의 씨네필들이 시네마테크를 찾곤 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관객은 20대에서 40대 정도의 젊은 사람들이다. 반면 런던과 파리의 시네마테크에는 노년의 씨네필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파리 5구역엔 3개의 독립 극장이 줄지어 있다. 국내외의 여러 공립 시네마테크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또는 월등하게 좋은 라인업을 선사하는 극장들이다. 그 중 Filmothèque du Quartier Latin에 방문하여 더글라스 서크의 <바람의 쓴 편지>(1956)를 관람했다. 국내의 멀티플렉스와는 다르게 비좁은 로비에는 화장실도 없으며(파리의 거의 모든 극장에서 화장실은 상영관 내부에 위치해 있다), 작은 티켓부스만이 그곳에 놓여 있었다. 게다가 좌석은 비지정석이다.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관객들은 극장 앞에 길게 줄을 선다. 6월의 파리는 아직 그렇게 덥진 않았지만, 그늘이 잘 들지 않는 곳에서 20여분을 기다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극장 앞에서 영화를 기다리는 40여 명 가량의 사람들은 대부분의 노년의 관객이었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마침 출국 전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통해 관람한) <씨네필>을 떠올렸다. 마리아 알바레즈는 그 관객들에게 보내는 러브레터이자, 노년의 활력을 드러내는 독특한 다큐멘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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