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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Oct 06. 2020

2020-10-06

1. 기획했던 상영회가 끝났다. <그녀를 지우는 시간>의 홍성윤 감독,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의 정여름 감독, <내언니전지현과 나>의 박윤진 감독, 그리고 상영회를 찾아주신 20명의 관객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상영회의 처음부터 진행까지 모든 과정에 참여한 것이 처음이라 미숙한 점이 다소 있었다. 다음에 또 상영회를 진행하게 된다면 보완해야지... 다소 거창한, 상영회 당일에 배포한 글은 브런치에 올려두었다. 세 편의 영화를 어떤 일정한 기획 하에 섭외한 것이 아니라, 일단 모아두고 난 뒤 상영회의 컨셉을 잡은 것이라 비약이 좀 있는 글이 나왔지만 어쨌든...


2. 감사하게도 영상자료원에서 샤프디 형제 특별전을 온라인으로 개최해 진행중이다. 이번 상영에 포함되지 못한 <아빠의 천국>부터 이들의 영화에 참여한 로널드 브론스타인의 장편 영화 <프라운랜드>를 마지막으로, 어제까지 상영되는 영화 전체를 관람했다. <헤븐 노우즈 왓>, <굿타임>, <언컷젬스> 밖에 보지 못했었기에 항상 샤프디 형제의 단편들이 궁금했었다. 먼저 연출을 시작한 조쉬 샤프디의 <우리는 동물원에 갔다>는 <언컷젬스>까지 이르는 샤프디 형제의 영화들과 궤를 같이한다. <언컷젬스>가 막 넷플릭스에 공개됐을 때 한 트친분이 샤프디 형제의 영화를 '폐쇄회로 영화'라 부르고 싶다고 말했었다. 폐쇄회로, 그것은 빠져나올 수 없이 막힌 길이다. 폐쇄회로가 가장 주되게 사용되는 곳은 CCTV다. CCTV는 카메라와 모니터 두 곳만을 연결하는 닫힌 회로만이 존재한다. 카메라의 찍힌 이미지는 닫힌 회로, 폐쇄 회로를 통해 정해진 모니터에만 전달된다. 이 지점에서 샤프디 형제의 영화 속 주인공들은 폐쇄회로에 갇힌 이미지들과 같다. CCTV의 이미지는 그 밖으로 벗어나지 못한다. 그 이미지가 폐쇄회로 밖으로 이동하는 경우는 주로 범죄와 연관된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뿐이다. <언컷젬스>, <굿타임>, <헤븐 노우즈 왓>의 죽음, 절도, 마약, 도박, 사기는 폐쇄회로 속의 이미지, 특정 공간(주로 뉴욕의 어느 지역이나 건물)을 벗어나지 못한 이들의 이미지가 그 밖으로 드러날 수 있는 사태를 형성하는 조건이다. 이것의 전조는 단편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녀의 뒷모습>에서 조쉬 샤프디가 연기한 주인공은 같은 건물에 사는 이들을 쫓는다. 5층에 사는 그의 눈에는 4층에 사는 랍비, 3층에 사는 여성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주인공은 3층 여성의 남자친구가 여성의 반려견을 폭행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그것을 메모지에 적어 전달한다. 그의 폐쇄회로적인 눈은 자신이 본 이미지를 자신 밖으로 전달해야할 사태가 벌어졌을 때 전달한다. <외로운 존의 지인들>, <도난당하는 것의 즐거움>,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존은 사라졌다> 등의 영화들 또한 이러한 상황을 전달한다. 절도, 장물 거래, 범죄는 아니지만 총을 꺼낸다거나 같은 버스에 탄 아이 엄마를 윽박지르는 등의 불쾌감을 주는 행위. 이 행위에는 목격자가 있고, 그것은 카메라-관객이거나 행위자의 주변인, 우연히 같은 공간에 있던 이들이다. 주변인은 대체로 그 행위에 동참하게 되고, 우연히 마주친 타인들은 행위자를 비난한다. 반면 카메라-스크린의 페쇄회로를 통해 불쾌감을 줄 수 있는 행위들의 이미지를 전달받은 관객은? 우리는 폐쇄회로 밖으로 흘러나온 이미지를 볼 뿐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동물원에 갔다>와 <레니 쿠크>는 '실패'라는 행위가 폐쇄회로 밖으로 이미지를 유출시키는 행위들과 같은 지위에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여기엔 이렇다할 불법적, 탈법적 행위나 불쾌감을 주는 행위가 등장하지 않는다. 전자는 동물원에 가다가 히치하이커를 태워주는 남매의 이야기이고, 후자는 NBA에서 성공하려던 농구선수의 이야기이다. 이들의 목표는 실패한다. 동물원은 문을 닫았고, 레니 쿠크는 NBA에서 잊혀져 요리사가 되었다. 샤프디 형제는 실패로 달려가는 이들의 모습을 찍는다. 다큐멘터리인 <레니 쿠크> 정도를 제외하면 영화의 마지막까지 이들의 행동이 실패할 것임을 예측할 수 없다. <우리는 동물원에 갔다>는 마지막 장면에서야 동물원이 문을 닫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언컷젬스>는 도박의 예측 불가능함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린 영화적 사례일 것이다. 이들은 패를 까봐야 알 수 있는 실패라는 행위를 찍는다. 이들의 영화는 실패를 향해 달려가는 이들을 폐쇄회로 속에 담아내고, 그것의 실패가 벌어지는 순간 그것을 폐쇄회로 밖으로 유출한다. 


3. 요즘 오바야시 노부히코의 작품들을 몰아보고 있다. <하나가타미>, <돌아보면 사랑>, <표적이 된 학원>, 그리고 <하우스> 이전에 연출한 실험영화 <이모션>. 그는 마츠모토 토시오, 테리야마 슈지 등이 왕성히 활동하던 60~70년대 일본 실험영화의 주축 중 한명이었다. 유튜브에서 그 당시의 작품인 <이모션>과 <컨페션>을 볼 수 있다. <하우스>를 시작으로 유작 <라비린스 오브 시네마>까지 꾸준히 이어진, 부분적인 스톱모션, 화면의 탈색, 이중인화 등 다양한 시각효과의 기술적 단초는 그의 단편 실험영화들에 담겨 있다. 물론 저 두편 밖에 보진 못했지만... 필름의 이중인화 대신 크로마키와 CG를 통한 이미지 합성이 유용해진 20세기가 되며 오바야시 노부히코의 영화 속 합성들도 매끄러워졌지만, 그것은 항상 과거의 것과 같은 질감을 향하고 있다. 가령 2012년 작인 <이 하늘의 꽃 나가오카 불꽃 이야기>나 2017년작 <하나가타미>에서의 합성이미지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나 <하우스>의 거칠고 윤곽선이 뚜렷한 이미지와 다르지만, 종종 의도적으로 윤곽선을 강조함으로써 이것이 합성된 이미지임을 명확히 알려주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여기서 뜬금없이 돈 헤르츠펠트의 <좋은 날>이 생각났다. <좋은 날>은 단기기억상실증을 지닌 이가 자신의 과거를 종종 떠올리게 되는데, 그것은 화면 위에 포털처럼 열린 동그란 화면을 통해 제시된다. 애니메이션의 기법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좋은 날>과 오바야시의 영화들이 유사하기도 하지만, 과거를 현재의 프레임의 소환해내는 방식의 측면에서도 유사하다. 그리고 이들이 소환해내는 과거는 노스텔지어적인 회상에 젖어 있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이방인들과 함께 한 여름>의 노스텔지아는 오바야시 노부히코의 후기작에서 펼쳐진 일본의 과거-현재-미래를 관통하는 것이자 착취되고 있는 어떤 대상으로 등장한다. 아직 그의 초기작과 후기작 몇 편만을 본 것이라, 정확한 판단은 90~00년대 작품들을 조금 더 보고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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