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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여름 Oct 25. 2020

우물 안 취준생

냉정한 밥벌이의 세계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그렇다면 고시생은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고시생 생활의 끝은 합격과 불합격만 있다고 생각했다. 고시생으로 사는 동안에는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한 살을 먹었다. 그리고 나이를 먹었음을 실감할 틈도 없이 다시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시험을 준비하면서 일을 하는 건 합격과 멀어지는 지름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저울은 시험 준비보다 일을 하는 쪽으로 자꾸만 기울었다.


학교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는 임용고사에 붙어야 한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중요한 시험에 합격하려면 응당 눈을 뜨고 감을 때까지 노량진에서 공부만 하기에도 모자라다. 친구를 만나는 것도 사치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만한 의지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12시간 이상 앉아서 공부만 하는 건 고등학교 때 이후로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자꾸만 일거리를 찾아다녔다. 그리고 일을 하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고시 공부를 놓지 않았다. 공부를 하는 것보다도,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는 호칭을 놓기가 두려웠다. 어정쩡한 입지가 오히려 마음을 더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마음이 조급해질수록 표정은 어두워졌다. 마음에도 불이 꺼지고 수면 부족과 갈 곳 없는 스트레스는 내 몸에 ‘다크서클’과 ‘군살’이라는 무늬를 남겼다. 선생님이 된 친구들은 일이 힘들어서 오히려 살이 빠졌다. 마음이 편하면 살이 찐다고들 하는데. 오히려 나는 마음이 불편할수록 살이 쪄버렸다. 달고 짠 음식들에게 위안을 받았다. 사람을 만나도 불편하고, 아무도 안 만나고 혼자 있으면 외로운 싸움이었다. 그래도 자꾸 마음이 허해서 불편하더라도 사람을 만났다. 오랫동안 시험을 준비하느라 고생한다며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해 주었다.

주변 사람들은 금방 임용고사에 합격하거나 더 늦어지기 전에 다른 길로 갔다. 다른 길로 간 이들은 기간제 교사를 하거나 다른 공무원 시험을 보거나 사기업으로 취업을 했다. 이십 대 중반의 나는 마음만 급하고 식견은 좁아서 주변 사람들이 가는 길이 마음에 새겨지지 않았다.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서도 막연히 언젠가는 붙을 거라는 희망만 품고 있었다. 노력을 해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세상에서 나는 노력도 없이 결과만 얻겠다는 욕심만 품은 사람이었다. 고맙게도 종종 주변에서 취업 정보를 알려줬지만 듣기만 하고 도전하지 않았다. 나 스스로 더 알아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정보를 알려 준 사람들을 무시해서는 아니었다. 정말로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먼저 취직한 사람들이 늘면서 아주 조금씩 쌓이는 것 같았던 나와 그들의 격차는 가랑비처럼 내 삶을 적셔갔다. 누구는 벌써 이만큼 경력을 쌓았고, 누구는 이런저런 직급을 달았다. 몇 년 간의 회사 생활로 자산을 조금씩 불리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것들 중 어떤 것도 갖고 있지 않았다.


남들이 다 아는 걸 나 혼자 모른다는 소외감은 나를 점점 더 외롭게 만들었다. 이 사회에서 하등 쓸모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고, 주변에서 해주는 조언들도 어쩐지 죄다 나를 비난하는 것처럼 고깝게 들린다. 준비하던 시험을 그만두고 취업을 해야하나 고민을 할 때가 가장 나란 사람이 뒤틀려 있던 시기였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다른 수험생들에 비해 목숨을 걸고 공부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자꾸만 집중력이 흐트러졌고, 남과 비교하면서 더욱 자신감을 잃어갔다. 대학 때까지는 알바로 삶이 여유로웠다면, 졸업 후 혼자 취업 전선에서 밀리고 나니 나는 점점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누가 만나자고 하면 공부나 알바를 핑계로 미루게 됐다. 어쩌다 만나더라도 다들 힘들게 번 월급을 어떻게 쓰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지 들어주어야 했기에 겉으로는 웃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더구나 점점 직급이 올라가는 친구들은 길게 휴가를 내서 해외 여행도 다니고, 나에게도 함께 가자고 권하기도 했다. 대학 때조차 해외 여행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나를 두고 다들 알게 모르게 안타까워 했다.

노는 게 싫었던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목숨을 걸고 공부를 한 것도, 남들만큼 스펙을 쌓아서 진작부터 취직의 목표를 세운 것도 아니었다. 정말 이도저도 아니었던 나는 객관적으로는 취업 시장에서 누구도 원할 리 없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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