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수분식 베이커리. 억수는 자녀의 이름일 것이다. 경상도에 사는 내 사촌 중에도 억으로 시작하는 이름이 있으니까. 모양새로 보아 족히 30년은 될법한 분위기의 가게에서 분식과 베이커리라는 두 단어를 발견한 순간 두 눈에 번쩍 떠졌다.
밀가루를 가운데 둔 동양과 서양의 만남이라니! 분식으로 대표되는 음식들과 베이커리에서 만들어지는 빵들이 머릿속들 맴돌았다.
억수분식 베이커리의 옛간판. 비빔밥. 된장찌기. 만두국 이라니.
경숙아!라고 누군가를 부르시는 할아버님 목소리에 잠이 깼다. 드르륵하고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간 가게에서 사모님이 나오셨다. 천정아래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액자에는 자녀들의 역사가 걸려있다.
내복 차림에 빨간 세발 스포츠카를 타고 있던 사진부터 노란 유치원 모자를 쓴 모습, 까까머리에 교복까지 한 사람 유년시절이 오롯이 담겨있다. 20년의 시간을 저 액자 한판으로 압축하다니, 이런것이 작품 아니면 뭘까.
쳐다보면 참을 수 없는 것들. 지금은 2개에 천원이 됐다.
천 원에 3개요. 사모님의 목소리에 번뜩 정신을 차렸다. 가게 밖으로 덧내 만든 진열장엔 찹쌀고로케, 팥빵, 꽈배기 등이 올라가 있었다. 분식과 베이커리 사이. 건강한 것들을 잃어버린 도시와 달리 건강한 것들만 가득해서 찾게 되는 하얀 설탕이 잔뜩 묻어는 빵들. 밀가루 음식도 단 것도 많지 않던 시절 누구에게나 환영받던 기름진 빵이 과거의 영광을 뒤로한 채 등을 드러내고 고스란히 누워있었다.
함께 간 사람의 나쁜 꾀임에 빠져 4세트를 샀다. 주문은 받은 사모님은 오늘 장사는 이것으로 끝내려 하셨는지, 아니면 나를 보며 한동안 못 본 억수가 생각나셨는지 본품보다 많아 보이는 우수리를 잔뜩 넣어주셨다.
빵으로 묵직해진 봉지와 유명한 마늘닭을 들고 돌아와 저녁을 먹을 때 닭보다 빵을 더 많이 먹었던 것 같다. 심지어 맥주도 빵이랑 먹었다.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한참 동안, 출출해지는 늦은 오후 시간이 되면 억수분식 베이커리가 생각났다. 인생도 설탕 잔뜩 묻은 꽈배기처럼 좀 풍요롭고 달달했으면 싶었기 때문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