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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큰 숨 7시간전

상처 2

너와 함께 성장하는 나

 새로운 학교에 적응이 시작되었다.

처음 한 학기 정도는 잘 적응하며 지내는 듯했다.

소규모 학교여서 뉴페이스에 대한 관심이 높았고 다행히 아이들이 잘 챙겨주었다.

학교 합창단 활동도 열심히 하고, 공연도 하고, 플릇도 배우고, 미술학원도 다니고...

그렇게 행복한 시간들로 가득 채워질 것만 같았던 생활은 그리 얼마가지 못했다.     


수빈이보다 머리가 한 개 더 있던 빌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수빈이 자체를 싫어했던 빌런..

빌런이 감췄던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전학을 간 첫 해인 4학년 생활은 그럭저럭 지나갔다.

그리고 빌런은 5학년이 되면서 기지개를 켜더니 활개 치기 시작했다.

나중에 수빈이와 이야기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4학년 2학기부터 왠지 모를 기분 나쁜 상황들이 생겼는데

' 예민하지 말자!, 잘 지낼 수 있어 '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교과협력 미술시간..

“야! 네가 지나가다가 건드려서 물통이 엎어졌잖아! 아이~ 짜증 나게! ”

“ 재 때문에 손이 미끌려서 그림이 이상해졌어 ”

혹시나 수빈이가 주위에 앉아있던 빌런을 건드려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수빈이는 앞에서 2번째 자리에 앉아있었고, 빌런은 맨 뒷자리에 앉아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할 때조차도 수빈이는 그 아이 근처에 없었다고 같은 반 친구들에게 전해 들었다.

    

피아노실 청소시간..

빗자루를 가져와 때리는 시늉을 하며

“ 넌 왜 청소를 이렇게 못하니? 손바닥 대!  맴매하게!!”

“ 싫어! 내가 왜 맞아야 해? ”

“ 네가 못하니까 맞아야지! ”

이게... 초등 5학년 아이 입에서 나올 말이던가....     

그 상황이 무서워서 피아노실을 빠져나왔다고 했다.


컴퓨터실에서.

“ 아!, 왜 쳐?”

“ 어머! 미안.. 근데 누가 거기 있으래? ”

“ 내 자리가 여기니까 있지 ”

“ 뭐야... 사람 지나가면 네가 비켜야지 ”  


뭐라도 시비 걸고 싶었던 아이는 말도 안 되는 상황들로 트집 잡고 아이를 괴롭혔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점심시간 보건실에서...

똑똑

" 어 들어와, 무슨 일 있니? "

김수빈에 대해서 할 말이 있어서 왔어요. "

“ 그래.. 잠시만 "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들어온 빌런.

빌런이 눈치채지 못하게 숨을 고르며 상담일지를 프린트했다.


" 언제 어떤 상황을 이야기하고 싶니? "

최대한 감정을 섞지 않기 위해 상담일지를 수기로 적으며 빌런의 이야기들을 들었다.

빌런은 거침없이 내 딸은 헐뜯기 시작했다.


 " 우리는 성교육을 배우는데 말도 없이 손잡고 팔짱 껴고 정말 기분 나쁘데요! ”

“ 누가 기분이 나쁘다고 했니? ”

“ 다른 친구들이요 ”

" 그 친구들을 보건실로 지금 데리고 올래? ”


잠시 후 빌런이 지목했던 아이들이 보건실로 하나 둘 모였다.

 

“ 수빈이가 말없이 손을 잡아서 기분이 나빴니? ”

“ 아니요! 전 괜찮았어요, 저도 말없이 팔짱도 껴고 하는걸요”

“ 민지는 괜찮다고 하는데? 넌 뭐가 문제니? ”

“ 수빈이가 배운 데로 안 하는 게 문제예요 ”     


내가 성교육 시간에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고 손을 잡거나 해야 한다고 가르쳤는데

당신 딸은 배운 데로 안 하고 있다고 내게 말하는 듯했다.     


“ 또 어떤 일이 있었니? ”

" 수빈이가 우빈이를 자꾸 때려서 힘들데요 "

" 그래?  우빈아 수빈이가 갑자기 널 때렸니? "

"................. 아니요 "

" 그럼 어떨 때 그랬어? "

".......... 제가 놀려서...... 하지 말라고 했는데.... 또 놀리니까 때렸어요 "

" 아팠겠구나. 그런데 넌 아무 잘못 없었는데 수빈이가 그런 건 아니었네. "

" 네. "

" 수빈아 친구가 놀렸다고 때리는 건 네가 잘 못 한 거야. "

" 네 "

" 우빈이도 놀리지 않으면 그런 상황이 안 생길 것 같구나. 원인제공은 네가 한 거야. "

" 네... "


" 또 할 말 있니? "

“ 쟤는 자기밖에 몰라요, 빨리빨리 해야 하는데 맨날 느려요! 빨리해야 조원이 피해를 안보죠”

“ 그래서 너에게 어떤 피해가 있었니? ”

“ 저는 없었고 은정이가 힘들다고 했어요 ”

“ 그래? 은정아, 수빈이가 행동이 느리고 빨리 안 해서 힘들었니? 어떤 점이 힘들었니? ”

“ 빨리하고 싶은데 느리니까 답답했어요, 근데 피해까진 없었어요, 그래도 좀 빨리했으면 좋겠어요 ”

“ 은정이는 피해가 없다고 하네. 수빈이는 앞으로 좀 빨리 서두르자! ”

“ 네..”      


내 딸아이가 나를 보며 눈시울이 붉어진다.

수빈이의 눈을 보면 억누르는 감정이 터져 나올 것 같아 애써 아이의 눈을 피했다.

엄마 앞에서 아이들이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창피했을까.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내가 무너지면 이 상담이 의미가 없어진다.

그래서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마음을 잡고 또 다잡았다.


“ 또 뭐가 문제니? ”

“ 음............................ 이제 없어요”

빌런은 더 하고 싶은 말들이 많은 듯했으나 자신의 생각과 달리 친구들이 괜찮다고 하니 애써 마음을 감추는 듯했다.     


“ 그래? ”

“ 수빈이는 친구들에게 할 말 없니?”

“ 내가 말없이 팔짱 껴고, 행동 느리게 해서 미안해. 그런데 난 너희 기분 나쁘게 할 생각은 아니었어.

그리고 나 놀리지 말아 줘. 내가 때린 건 미안해 ”

  (눈물을 흘리며... 감정을 꼭꼭 누르며 아이가 이야기한다.)


그런 수빈이의 모습이 안쓰러웠던 건지..

빌런을 제외한 아이들이 수빈이를 다독였다.

“ 괜찮아, 네가 싫은 게 아니야. 나는 네가 손잡고 하는 거 기분 안 나빴어 ”     

" 나도 피해 준다고 생각은 안 했어. "

" 이제 안 놀릴게.."


“ 와~~~ 십 년 묵은 고구마가 내려가는 기분이네, 이제 갈게요 ”

빌런이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야기한다.

마치‘ 김수빈 엄마! 당신 딸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맘에 안 들어’라고 내게 말하듯...


아이들이 보건실에서 나가고

벌벌 떨리는 손을 애써 잡으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덩치가 크다는 것만으로도 아이에게 위협이 될만한 빌런.

수빈이는 그런 아이가 올 때마다 온몸이 얼어붙는다고 했다..


아이가 더 이상은 힘들어하는 걸 볼 수 없었기에

기간제 교사라고 나 혼자 눈치를 보며 문제를 삼킬 필요가 없었다.     

전학 오기 전 회피 했듯이 난 또 아이에게만 잘 적응하라며 무거운 짐을 지어줬었나 보다.

나의 근무지인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고 했던 나의 이기심으로 또 아이는 혼자 외로웠으리라.


담임선생님도 이런 상황들을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내가 정식으로 민원을 제기하지 않았기에

아이들 선에서 훈육하고 마무리를 하는 정도로 소극적인 대처를 하고 있었다.


' 이제 내가 적극적인 민원을 제기하리라 '  

그동안의 일들에 대해, 그리고 오늘 일에 대해 담임선생님께 동료 vs 동료가 아닌 학부모 vs 담임으로 정식으로 상담을 요청하여 이야기하고 상담일지를 전했다.


빌런은 학교에서 만의 훈육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을 알기에 학부모 연계훈육을 요청하고, 그래도 개선되지 않으면 학폭신고를 하고자 한다는 생각을 전달했다.

그리고 빌런 학부모와 상담 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답변을 요청하였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내 아이를 지켜야겠다.

나는 엄마니까!




며칠 후

빌런의 부모가 아이를 잘 훈육하겠다며 죄송하다고 연락이 왔다.

앞으로 또 이런 일이 발생되지 않게 하겠노라며 생각보다 쉽게 마무리가 되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이렇게 쉽게 될 일이었다면 고민하지 말고 아이 편을 무조건 들어줘야 했다.

못난 엄마를 만나 아이만 힘들었구나.. 자책이 들었다.     

그 후로 불행인지 다행인지..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유행하면서 아이들이 학교를 등교하지 않으면서 빌런을 마주칠 일이 없었다.

그렇게 빌런의 활약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 그럼 그렇지 '

6학년 2학기에 등교를 하면서 빌런은 또 다른 방식으로 아이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담임 수업시간

“ 이 내용은 수빈이와 철수가 부부일 때.... 불라 불라 불라...”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빌런이 수빈이를 밀치거나

그림 그리기 대결을 하자고 하면서 그림을 못 그린다고 면박을 주거나 아이들을 꼬시면서 혼자 있게 하거나 하는 일들이 생겼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빌런이 철수를 좋아하고 있었는데 담임선생님이 철수와 수빈이를 부부로 예를 들면서 설명을 하자 열이 받아서 그렇게 했다고 들었다.     

담임선생님께 오늘 있었던 일과 작년 일들을 다시 이야기하며  절대 수빈이를 철수와 엮지 말라고 당부했다.  




나와 성격이 다른 아이.

마음이 여리고 여린 아이..

빌런의 괴롭힘이 있을 때마다 그걸 가만히 뒀냐고 내 아이만을 다그쳤다.

아이는 빌런을 볼 때면 자기도 모르게 석상처럼 몸이 굳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다고 했다.   


이렇게 아이가 힘들어진 것은 아이의 상황과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던 내 탓이다.

그동안 아이에게 스스로 극복하라고 했던 나 자신이 미웠다.  


그 상처가 얼마나 깊었을까..

얼마나 무섭고 외로웠을까..

엄마란 사람이 비겁하게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회피할 때 아이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지금도 후회된다.


그렇게 아이는 엄마의 도움을 간절히 원했건만 엄마에게 두 번이나 외면당했다.          

대체 왜 내 딸이 친구들에게 미움을 받을까..?

지금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참 아이러니 하게도 어른들과 선생님들은 수빈을 예나 지금이나 너무나 예뻐하신다.

언니 오빠들 사이에서도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이가

친구들 관계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둠에 갇혀 있었다.     


손바닥은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며 아이 편에 서지 않았고 제 3자의 시선으로 조언과 충고를 했던 그 시간이 후회스럽다.

아이는 무조건적인 내 편인 엄마가 그리웠을 것을 너무나 늦게 알아버렸다.

그래서 아이의 시간이 암흑에 갇혀 두려움이 쌓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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