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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영 May 09. 2024

76. 내가 만난 100인

맥주 한 잔의 사이

"죄송합니다. 저는 당신이 찾고 있는 위정이 아닙니다."


그녀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은 단 세명이었다.

그녀의 특이한 성 때문에 그런 듯하다.


"위정, 당신 지금은 잘 지내나요?"

"그동안 당신의 삶은 어땠나요?"


그녀가 사라진 후, 위정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터넷 사용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몇 주의 시간차만 있었을 뿐 돌아오는 답변은 똑같았다. 어쩌면 그 답변 중 하나는 그녀 스스로가 작정하고 보낸 것일지도 모른다는 씁쓸한 현실에 더 이상 찾지 않았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대형학원에서 강사로 일 할 때였다.

전공과목이 달랐지만 바로 내 뒷자리에 앉은 한 달 차의 입사동기 그리고 동갑내기 또 동네친구였다.


사회초년생이었던 우리는 각자 꿈에서 한걸음 물러 선 뒤 이곳을  '잠시 머물 곳'으로 정했다. 그동안 우리는 어떻게든 부끄럽지 않은 교육자로 남으려 발버둥 쳐왔다. 그럼에도 현실은 반쪽짜리 우리를 완전히 가둔 채 도저히 벗어날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이런 서글픈 현실을 우리는 '청춘'이라 불렀다.


"원장과 부원장은 완전히 돈에 미친 사람들 같아요. 그들 눈에는 아이들 머릿수만 보이나 봐요!!"


이렇게 씩씩거리는 내게 그녀는 차분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선생님, 지금 어디예요?"

"집이에요."

"우리 중간지점에서 만나 맥주 한 잔 할까요?"


그녀와 나는 각자집에서 15분쯤 걸어 나와 중간 지점에 있는 한적한 공원에 앉았다. 그녀는 먼저 자신의 애완견 보더콜리를 벤치옆에 묶어두고 챙겨 온 물과 간식을 주었다. 그리고는 밴치에 기댄 채 맥주 캔을 따는 소리가 신호탄처럼 울렸다. 우리의 대화 절반은 대부분 학원 욕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일주일에 한, 두 번은 이곳으로 나와 회포를 풀며 일 년의 일상을 채워갔다.


"곧 이사를 해야 할 듯해요? 오늘 새로 이사할 집을 보고 왔는데 집이 너무 작아서 책을 놓을 공간이 부족할 것 같아요."


"주말에 이사를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래도 임용서적은 놓을 자리가 있을 줄 알았는데 없더라고요. 주말 내내 책을 버리면서 엄청 울었어요."


"우리 엄마는 언제쯤 사고를 그만 칠까요?"


그녀는 1점 차로 임용고시에서 떨어져 지금 이곳으로 왔다. 다시 임용을 준비하려고 했지만 당장 돈을 벌어야 했다. 설령 임용에  합격해 학교로 들어간다 해도 교사의 초봉으로는 생활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나 다음 달에 학원을 옮길 예정이에요. 오늘 면접 본 학원에 연봉 높여서 계약을 했어요. 선생님도 일 년이 넘으면 옮길 거죠?"

"그래야죠. 학교마다 방과 후 프로그램 지원서를 보내고 있는데 연락이 오면 슬슬 움직여야 할 듯해요."

"저는 내일 원장님과 면담신청했어요. 이제 여기도 한 달이면 끝이네요."


"우리 주말에 야릇한 영화 한 편 보러 갈까요? 바람난 가족!"

"좋아요! 야한거 아주 좋아합니다."

"오후쯤 해서 내가 예매해 볼게요. 아주 진한 퇴사선물입니다."

"진한 퇴사선물!!! 기꺼이 받겠습니다."


그날이 수요일밤이었다. 다음날 목요일은 내가 출근하지 않는 날이었다.

"위! 5시 영화 어때요? 끝나고 맥주 마시면 딱이네요!"

그녀에게 답장은 없었다. 수업 후 원장과의 퇴사 면담도 잡혀있으니 바쁠 거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내일 출근해서 얼굴 보고 얘기하면 되는 일이었다.

다음날 금요일, 출근을 했는데 교무실이 어수선했다. 그리고 그녀 자리가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혹시, 위쌤 어떻게 된 건지 아세요?"

다른 선생님들이 여기저기 눈치를 보며 내게 물어왔지만 아는 게 없었다. 같은 과 주임에게  물어봤지만 그도 마찬가지였다.


"위! 어떻게 된 거예요?"

"위! 전화 좀 줘요!"

"위! 우리 만나서 얘기 좀 해요."


그녀는 문자도 전화도 받지 않았다. 일단 무슨 사정이 있나 보다 하고 잠시 연락을 보류했다. 그리고 며칠을 기다리다 전화를 다시 걸었다. 그녀의 전화번호는 없는 번호가 되어있었다.

'뭐지?'

앞이 깜깜했지만 그래도 한 줄기 희망이 있었다. 그녀가 이직한 학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몇 주 뒤 그녀가 이직한 학원의 시간표가 나왔다. 하지만 강사진 어디에서 그녀의 이름은 없었다.

그렇게 그녀는 내게서 사라져 버렸다. 

나는 마치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녀가 잃어버린 내 반쪽 날개인 것처럼 찾아다녔다.

그리고 여기저기 메일을 보냈고 연락을 기다렸다.


잠시 머물렀던 자.

아직도 머물고 있는 자.

잊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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