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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현중 Jun 20. 2022

누구에게나 있다

2022년 6월 2주

  학급에서 하는 회장 선거에 출마했다. 늘 그랬듯이 반을 무언가 혁신적으로 바꿔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회장 선거를 한다니 나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등록을 했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 선거 공약 발표날이 되었고, 나는 또한 늘 그랬듯이 그냥 평소에 생각하던 말을 하고 내려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앞에 두 친구의 발표가 시작되자 난 회장 선거를 하며 처음으로 당황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친구는 6가지의 공약을 준비하였는데, 모두 우리 반의 문제점들을 평소 세밀하게 살피고 그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들을 제시한 것이었다. 첫 공약 발표부터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였는데, 두 번째 친구의 발표 또한 우리 반에 대한 정성이 느껴지는 발표였기에 난 내가 무엇을 더 말해야 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너무나 앞 두 친구의 발표가 강렬하게 남아있어서, 난 내가 그 친구들보다 더 나은 것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고민을 끝내지 못한 난 결국 그동안 생각해왔던 말만을 하고 내려왔다. 나보다 다른 친구들의 반에 대한 애정이 더 크게 느껴졌기 때문에, 다른 친구에게 투표했다. 그때 난 이미 내가 회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난 그들처럼 반의 문제점에 대해 세밀하게 살피지도 못했고, 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반에 대한 애정이 크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난 학급 임원이 되겠다는 생각을 접은 상태로 개표를 지켜보았다. 

  마음과는 달리 결국 난 부회장이 되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평소에 해왔던 내 행동들을 보고 나에게 투표했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만큼 내가 평소에 친구들에게 믿음을 줬다는 뜻일 것이다. 어찌 되었든 그렇게 당선 소감 발표를 하는데, 조금 의외의 이야기가 나왔다. 당선된 친구 중 한 명이 자신의 아픈 기억을 꺼내놓은 것이다. 초등학교 때 한번 회장 선거에 나갔다가, 자신이 뽑은 한 표만 받고 떨어진 뒤로, 지금이 처음 회장 선거에 나온 것이라는 과거였다. 그 친구의 발표에서는 우리 반에 대한 관심이 너무 잘 느껴졌었기에, 당연히 학급 임원을 몇 번 경험해본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과거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누구에게나 트라우마는 있다. 그 트라우마가 남이 보기에는 어떨지 몰라도, 자신에게는 극복하는데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난 그 친구의 이번 회장 선거가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무엇이든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해본 경험은 쉽게 얻을 수 없는 경험이니 말이다. 부회장에 당선된 후 그 친구의 소감 발표를 듣고 나서, 난 임원이라는 자리가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6명의 후보들 중 떨어진 친구들 중에도 어쩌면 그런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친구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난 그들의 트라우마를 밟고 올라간 셈이니, 내가 짊어져야 할 무게가 한 층 더 늘어난 것이다. 



아픔은 나에게도 있다. 난 그 아픔을 누구한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며 일주일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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