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끝에서 먼저 향이
피어오를 때

미나리가 식탁에 올라오는 계절

by 두부

나는 미나리를 좋아한다.
미나리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맛보다 향이다. 손에 쥐는 순간 퍼지는 싱그러운 내음은, 계절이 어디쯤 와 있는지를 조용히 알려준다. 아직 공기는 차갑고 겨울의 끝자락에 머물러 있지만, 미나리는 이미 봄을 알고 있는 채소처럼 느껴진다.

[사진=풍각마을]

미나리는 늘 먼저 나서지 않는다. 눈에 띄는 색도 아니고, 강하게 밀어붙이는 맛도 아니다. 그런데도 어떤 음식과 만나든 자연스럽게 스며들며 맛의 균형을 잡아 준다. 자기 존재를 드러내기보다, 함께하는 재료들이 제 맛을 낼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 주는 쪽에 가깝다.

생선 찌개에 들어간 미나리를 떠올려 보면 그 성격이 분명해진다. 미나리는 비린내를 억지로 덮어버리지 않는다. 대신 생선이 가진 향과 맛을 정리해 주고, 국물의 끝맛을 한결 맑게 만든다. 덕분에 생선은 더 생선답게, 찌개는 더 편안한 맛이 된다.


이런 미나리의 태도는 다른 요리에서도 같다. 파스타나 피자의 소스로 활용한 미나리 페스토 역시 요리를 지배하지 않는다. 향은 분명하지만 튀지 않고, 기름진 맛을 부드럽게 정리하면서 풍미를 한 겹 더 쌓아 올린다. 그래서 한 입을 먹고 나면, 자연스럽게 다음 한 입을 떠올리게 된다.


해외의 허브들과 비교하면 미나리의 이 점은 더욱 또렷해진다. 바질이나 로즈마리처럼 향이 강한 허브는 사용량을 늘 조심하게 된다. 조금만 많아도 요리의 방향이 바뀌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나리는 다르다. 넉넉히 넣어도 부담스럽지 않고, 맛이 과해지지도 않는다. 마치 조용히 자기 몫을 해내는 사람처럼, 눈에 띄지 않게 제 역할을 다한다.


한국 식탁에서 미나리는 오래전부터 몸을 다스리는 채소로 여겨져 왔다. 기름진 음식을 먹은 뒤 자연스럽게 곁들여졌고, ‘피를 맑게 한다’는 말로 그 역할이 전해졌다. 지금은 베타카로틴과 비타민 A, C가 풍부하고, 칼륨과 식이섬유가 많아 항산화와 순환, 장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설명이 뒤따르지만, 사실은 먹고 나서 느껴지는 몸의 가벼움이 먼저 기억에 남는다.


미나리는 물이 맑은 곳에서 자란다. 겨울에도 수온이 비교적 안정적인 지역에서는 하우스 미나리가 자라고, 봄이 깊어지면 자연에서 자란 돌미나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자란 환경에 따라 향과 식감은 달라지지만, 자기 자리를 지키는 성격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미나리는 영어로 워터 그래스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이 말로는 미나리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셀러리도 아니고, 워터크레스도 아닌, 미나리만의 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나리를 처음 먹어본 외국인들은 낯설다는 말을 하면서도, 이상하게 그 향을 오래 기억한다. 한 번 기억된 미나리는 쉽게 잊히지 않는다.


요즘 나는 미나리를 페스토를 즐겨 먹는다. 이 계절의 향을 조금 더 오래 붙잡아 두고 싶어서다. 파스타에 얹어도 좋고, 구운 생선이나 따뜻한 밥 위에 살짝 올려도 좋다. 미나리는 여전히 조용하지만, 그날의 식탁을 분명하게 기억하게 만든다.


아직 겨울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걸 알면서도, 미나리를 먹으면 봄을 믿게 된다.
향은 언제나 계절보다 먼저 도착하니까.


미나리 페스토

미나리의 향을 오래 쓰는 방법

미나리 페스토는 미나리의 성격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방식 중 하나다. 향은 분명하지만 튀지 않고, 어떤 음식과 만나도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파스타, 피자, 생선, 밥까지 활용의 폭이 넓다.


재료

미나리 50g
잣 혹은 호두 18g
마늘 1쪽
올리브오일 60~80ml(농도보며 조절)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 30ml


만들기

미나리는 깨끗이 씻은 뒤 물기를 충분히 제거한다. 줄기와 잎을 함께 사용하되, 너무 굵은 줄기는 적당히 잘라준다.

(호두 사용시 그대로 사용하지 않는다. 뜨거운 물에 잠시 담가 껍질을 불린 뒤 겉껍질을 벗겨낸다. 이 과정을 거치면 호두 특유의 쓴맛이 줄고, 페스토의 맛이 훨씬 부드러워진다.)

블렌더에 미나리, 껍질을 제거한 호두혹은 잣, 마늘을 넣고 곱게 간다. 올리브오일을 천천히 부어가며 농도를 맞춘다.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를 더해 풍미를 보완한다.


활용

파스타에 올리면 향이 또렷해지고, 피자 소스로 사용하면 기름진 맛이 정리된다. 구운 생선이나 닭고기 위에 곁들이면 재료의 맛을 해치지 않으면서 깊이를 더해준다. 따뜻한 밥 위에 한 숟갈 얹어 비벼 먹어도 좋다.


음식 너머에 머무는 속삭임, 두부의 이야기( ˶˙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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