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플로나~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
산티아고 순례길 6일 차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알베르게에 묵게 되었다. 기차를 놓쳐서, 알베르게에 자리가 없어서, 도시에서 쉬느라 우리는 5일간 알베르게를 구경도 하지 못했다. 6일 차 목적지 푸엔테 라 레이나의 한 알베르게를 예약했다. 첫 알베르게! 설렜다.
알베르게에 들어섰다. 카운터를 보던 남자가 저쪽으로 가면 된다고 했다. 처음 보는 숙소 형태였다. 원래는 창고로 사용했던 공간일까? 벽 하나 없이 널찍한 공간 내에 이층 침대가 끝도 없이 놓여 있었다. 그동안 가봤던 게스트하우스나 호스텔의 이층침대와는 또 달랐다. 그런 곳은 대부분 침대에 커튼이 달려 있어서 나름 개인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여기서는 커튼이라니, 무슨 호사스러운 말을 하냐고 할 것만 같았다.
”와, 군대 훈련소 같아.”
20여 년 전에 육군 병장 만기 전역한 제이가 말했다. 나는 군대를 안 갔다 왔으므로 훈련소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지만, 군대로 비유가 되는 무언가가 좋은 속성을 가진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사실상 모든 사람이 한 방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알람 한 개가 울리면 알베르게에 있는 모든 사람이 듣고 일어날 수 있는 구조였다. 그리고 그다음 날 아침, 그 일은 실제로 발생했다. 오전 5시부터 어떤 이의 알람이 울렸다. 눈을 감고 알람을 못 들은 척해보았지만 그 뒤로 비슷한 알람이 몇 번이고 울리는 바람에 잠이 깨고 말았다.
얼굴에 물을 묻히러 화장실로 향하는데, 어라, 알베르게가 이미 반쯤 비어있었다. 남은 이들도 신발끈을 묶고 있어 1초 후면 길 위에 있을 사람들이었다. 정말 아무 준비도 하지 않은 사람은 나와 제이뿐이었다.
“사람들 진짜 부지런하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다 여기로 모였나?”
우리는 고개를 갸웃하며 배낭을 꾸리고 전날 예약한 아침 식사를 먹으러 알베르게 식당에 갔다. 아침 식사는 딱 우리 둘 것만 준비되어 있었다. 어리둥절했다.
오전 8시. 건물 내에는 알베르게 주인장, 나, 제이, 순례객 한 명 이렇게 총 4명뿐이었다. 그러니까 순례객은 딱 3명이었다. 그마저도 다른 순례객은 다리를 다쳐 택시를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걸으러 갈 사람은 딱 우리만 남아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남은 커피를 원샷했다. 마치 주변의 공기마저 내게 눈치를 주는 것 같았다.
알베르게 체크아웃 시간은 8시지만 많은 여행객들이 아무리 늦어도 7시 반에는 길을 나선다는 것을 알았다. 스페인의 햇빛은 몹시 사납다. 늦게 출발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너를 태워버리리라 소리치는 것 같은 햇빛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산티아고 길을 걷는 내내 숙박 전쟁에 시달렸기 때문에 일찍 출발하여 다른 이들보다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편이 이로웠다. 부킹닷컴으로 예약할 수 있는 숙소는 이미 자리가 없는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예약을 받지 않고 도착 순으로 침대를 배정하는 공립 알베르게에서 묵어야 하는 날이 많았기 때문이다.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누워 있자 하니 햇빛이 피부과 레이저같이 오며 네 침대가 다른 이에게 이르리라. 우리는 그렇게 이 길의 룰을 하나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