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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두부 Jan 17. 2024

7일차. 카푸친 형제의 끔찍한 요리

푸엔테 라 레이나~에스떼야(Estella)


이번에 예약한 알베르게는 ‘카푸친 작은 형제회’라는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순례길을 걸으며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에 묵다니, 나 제법 순례자 같은데?’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일수록 순례자와 거리가 멀다.


알베르게 곳곳에는 십자가와 수도자들의 그림과 상이 장식되어 있었다. 계단을 오르다가 층계참에서 빵 한 덩이를 들고 수도복을 입은 채 근심하는 표정을 지은 수도사 상을 만났다.


“왜 이리 울상이시지? 맛없는 빵을 받은 거 아닐까?”


우리는 꺄르륵 웃었다.


나와 제이는 대토론을 시작했다. 안건은 알베르게 식당을 갈 것인가,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중국 식당에 갈 것인가. 


우리의 혀는 뜨끈한 국물을 원하고 있었다. 또 빵쪼가리 뜯을 거야? 하지만 다리와 발은 강경하게 파업을 외쳤다. 순례길이 아닌 길은 1밀리도 걷기 싫다! 


둘 다 일리가 있군. 그렇다면 공정하게 메뉴를 보고 결정하자. 알베르게 식당에 가서 메뉴를 보았다. 러시안 샐러드, 까르보나라 파스타, 플랑(스페인식 푸딩). 오 플랑이라니, 플러스 1점 드립니다. 까르보나라 파스타, 나쁘지 않아. 근데 러시안 샐러드가 뭐지? 뭔진 몰라도 오랜만에 신선한 야채를 먹는 건 좋지. 플러스 1점 더 드립니다. 우리는 솔로몬만큼이나 공정한 판결을 내려서 알베르게 식당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사실은 메뉴 가산점보다 게으름 가산점이 더 컸다. 지금 나 보고 10분을 더 걸으라고? 왕복하면 20분인데? 몰라몰라, 안해안해. 솔로몬은 무슨, 편파 판정이었다.


저녁 시간, 식당에 도착했더니 먼저 와서 앉아 있는 순례자들이 보였다. 그들 앞에 놓인 접시 위에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올려져 있었다. 첫 번째 메뉴는 분명 샐러드였는데? 불길했다. 숨넘어갈 듯 제이를 불렀다.


“잠깐만 잠깐만! 좀 이상해.”


“뭐가?”


“저기 저 접시 좀 봐봐…. 이상한 게 있어….”


“이미 돈 냈어.”


이 인간이 쓸데없이 빨랐다. 이미 낸 돈을 돌려달라고 할 용기는 없었다. 여기는 수도원이니까. 나는 체념하고 빈자리에 앉았다.


곧 우리 앞에도 접시가 도착했다. 희끄무레한 것의 정체가 밝혀졌다. 마요네즈에 잔뜩 버무린 감자와 콩과 당근이었다. 초록 잎사귀를 기대했던 나는 크게 웃고 싶었지만 요리사가 너무 가까이 있었으므로 간신히 참았다. 나는 예의를 아는 사람이니까. 포크로 샐러드를 한 입 떠 입에 넣었다. 마요네즈와 감자와 콩과 당근 맛이었다.



마요네즈와 감자와 콩과 당근



이제 메인 요리 차례였다. 비주얼부터 심상치 않았다. 접시에 삶은 면을 턱 얹고 슈퍼에서 파는 파스타 소스병을 따서 한 숟갈 쪼르륵 부은 것이 틀림없었다. 포크로 면을 조금 집어 입에 넣었을 때, 나는 더 이상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이건 예의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이런 음식을 내놓은 것도 그다지 예의 바르다고 볼 순 없다. 이 음식은 입안에서 살살 녹아서 씹을 필요가 없었다. 면이 냄비 속에서 억겁의 시간을 보낸 듯 퉁퉁 불어 혀로도 으깨졌기 때문이다. 건너편 테이블에 앉은 프랑스 할머니는 파스타를 한 입 먹고는 포크를 내려놓고 먼산을 보고 있었다.



까르보나라 파스타



마지막, 디저트 차례. 팬에 눌어붙은 반죽을 최선을 다해 떼어낸 다음 캐러멜 소스로 무마되길 바라며 소스를 와르르 쾅쾅 쏟아부은 듯했다. 나는 이걸 상에 내놓을 생각을 한 요리사의 용기에 감탄하고 말았다. 맛을 보았더니 탄 맛과 단 맛이 양극단에서 느껴졌다. 확신했다. 이건 벌이다. 순례길 말고는 1밀리도 걷기 싫다고 한 게으름뱅이들에게 내려진 벌이다.



플랑(돈까스 아님 주의)


거의 먹지 못한 채 식당을 나와 계단을 올랐다. 맛없는 빵을 들고 근심하고 있는 수도사 상을 또 만났다. 수도사 상이 말하는 듯했다. 내가 미리 말했잖니. 맛없다고.



알고보니 스포일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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