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소비쿠폰 담당자가 됐을까

쿠폰 하나에 시골이 들썩

by 보석바

내가 일하는 산업경제팀은 아슬아슬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정규직은 팀장님과 7급 농업직 주무관 단 둘. 한시임기제로 들어온 나님과 기간제 두 명이 그 뒤를 잇는다. 한 사람 빠지면 팀 전체가 휘청이는 구조다. 새로운 업무를 받아 머릿속이 이미 복잡한 상황에서, 나는 [민생회복 소비쿠폰]이라는 생전 처음 듣는 정책의 담당자가 되었다. 그런데 이 팀. 쉽게 볼 팀이 아니었다. 위기의 순간에 강한 빛을 뿜어내는 놀라운 팀이었다.


면사무소에선 개인에게 여러 ‘과’의 업무가 분장된다. 나의 경우는 축산지원과, 경제활력과, 농업정책과… 뭔가 있어 보이는 이름의 과들이 줄줄이 붙어 있고, 민생폰(민생회복 소비쿠폰, 내가 줄인 말이다)도 그중 하나였다. 지금이야 이 업무가 왜 내게 왔는지 얼추 이해되지만, 당시엔 이게 무슨 일이냐며 혼자 꽤 흥분했다. 아니, 무슨 못된 팥쥐 엄마들도 아니고, 왜 이런 복잡한 일을 초짜한테 맡기냐고.


면사무소에는 면장님이 계신다. 2층 사무실에 계셔서 1층 민원업무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 첫날은 바빠서 존재조차 몰랐는데, 다음 날 면장님이 “왜 인사를 안 오냐”라고 하셨다. 그렇게 부면장님이라는 또 다른 직책도 알게 되었다. 조직 체계가 이렇게 복잡했나? 어쨌든 각 잡고 인사를 드리러 갔더니, 보조개 깊은 귀여운 인상의 여성분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그리고 첫 질문.


“직장은… 다녀보셨어요?”


순간 웃음인지 한숨인지 모를 감정이 훅 올라왔다. 이력서 안 보셨나? 또 나를 증명해야 하나? 급히 나의 커리어를 읊었다. 법인에서 근무한 경력, 행정 경험,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 엄마이니 칼퇴가 중요하다는 점까지. 내가 너무 ‘칼퇴근 강조형’으로 포지셔닝한 걸까. 다들 나를 마치 유리그릇처럼 취급하며 은근히 걱정하는 분위기였다. 내가 그렇게 후져 보였나?


그때부터였을까. 이상하게도 능력을 증명하고 싶단 욕심이 들기 시작했다. 공문을 직접 시범 보이시며 “이게 바로 공문이다”라던 팀장님의 한마디가 기름을 부었다. 어느 날 팀장님이 부재중이던 사이, 부면장님이 다가오더니 묻는다. “민생폰 담당자 맞죠? 첫날 민원인 몰리면 어떻게 할 거예요?” 그 순간, 내 속에 있던 ‘눈에 띄지 말자’ 모드가 와르르 무너졌다.


이곳 생활 2년 차 20대 후반 기간제 직원에게 업무를 배우는 건 나름 굴욕적인 순간이었다. 물론 그 친구는 정말 친절하고 잘 가르쳐줬다. 다만 T형에 목소리가 커서인지 속은 뒤집어졌다. 업무 지침서, 체크리스트, 민원인 폭주 대응방안, 인력 배치안… 나는 미친 듯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위기 회로를 돌렸다. 민간에서 실수는 곧 ‘책상 뺀다’였던 과거 기억이 되살아났다. 전투력 200%로 실전 매뉴얼을 짜기 시작했다.


그러다 부면장님이 또 다가오셨다. “내일 면장님 교육 중에 들르실 거예요. 보고 자료 준비해 주세요.” 이건… 내가 하는 게 맞나? 하지만 아무도 그런 걸 묻지 않았다. 내가 맡은 일이면 그냥 내가 해야 하는 것이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회의실로 팀장님을 조용히 불러냈다. 전날 출장이라 말도 못 드렸지만, 준비한 계획안을 조목조목 설명드렸다. 심장은 쿵쾅거렸고, 목소리는 좀 떨렸다.


“담당자니까, 그럼 담당자가 알아서 해보세요.”


팀장님은 살짝 표정이 굳으셨다. 순간, 뭔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나도 급히 태도를 바꿨다. “아니 뭐 제가 현장 파악이 안 돼서 그냥 짜본 거예요. 부면장님이 걱정하셔서요… 그저 혹시 몰라 만든 거지, 당연히 팀장님 의견 먼저 들어야죠.” 땀이 맺혔다. 어쨌든 진심은 통했는지 팀장님이 회의를 소집하셨고, 모두가 함께 방향을 잡기 시작했다.


회의 중 팀장님은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신청은 요일제로 운영되고, 생각보다 신청자도 적을 것 같다고.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판단이었다. 그리고 정말 신기하게도 대참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아침부터 오픈런이 시작됐지만, 팀원들이 모두 나서서 민원인을 응대해 준 덕분에 수월하게 넘어갔다. 마을 이장님들에게 사전 홍보 문자를 보낸 것도 한몫했다.


정책이 이렇게 갑자기 실행되는지 그땐 몰랐다. 교육은 시행 3~4일 전에야 있었고, 서식이 오고, 홍보물이 도착하고, 사이트가 열렸다. 인력 배치는 이미 정해져 있었고, 마치 퍼즐 조각이 마지막 날에야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손님, 지팡이를 짚고 들어오신 35년생 할머니.


아, 이렇게 오늘의 대환장 파티가 끝나가는구나. 허술하게만 본 이 팀이 이렇게도 탄탄한 팀이었다니. 역시 고수들은 긴 말을 하지 않는 법. 내일도 우리 팀과 함께라면 두렵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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